2022년 삿포로 연대행동 보고 : 올림픽을 멈추자! 4도시 회의

1972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으며, 최근까지도 203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추진했던 삿포로시는 2023년 4월에 2030년 동계올림픽 유치 추진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2034년 올림픽 유치 추진의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올림픽 유치 추진 과정의 여러 문제에 대한 삿포로 사람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다른 도시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 도쿄올림픽 개최가 임박했을 때, 폭염 속 경기 개최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마라톤과 경보 경기를 삿포로에서 진행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도쿄올림픽조직위나 삿포로시와는 아무런 사전 논의가 없었다. 삿포로의 거리는 올림픽을 위해 재편되었다. 경기 코스에 포함된 대학 내 공간, 공원, 시내 거리에서 정비 공사가 진행되었고, 일부 상점들에게 “경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시설물을 철거하거나 이전할 것이 강제되었다. 이 모든 비용은 삿포로시의 부담이었다.

올림픽 경기 일부 종목의 삿포로 개최에 동의한 적이 없는 삿포로시 주민들은 이에 항의하기 위해 2021년 7월에 20km에 달하는 마라톤 코스 일부 구간을 걷는 행진을 9시간에 걸쳐 진행했고 약 100여명이 함께했다.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11월에 삿포로시는 2030년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공식화했다. 이에 지난 행진을 제안했던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올림픽 유치에 맞서는 ‘삿포로올림픽대책실’이 꾸려졌다. 이들은 2022년 6월에 첫 집회를 개최한 후, 혹한기를 제외하고 매달 정기적으로 집회를 진행해왔다. 

삿포로에서는 2022년 7월에 나가노, 평창, 도쿄 등 올림픽 개최 도시들이 모이는 공동 집회 ‘올림픽을 멈추자! 4도시 회의’가 개최되었다. 평창올림픽반대연대는 지금까지의 활동을 통해 올림픽에 맞서는 각 지역 사이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해왔다. 어느 개최지에서나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고 나면, 공공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올림픽 사업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이 극도로 제한되기 때문에, 유치 단계에서부터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공동 집회에 참가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이후 상황은 이후 보다 상세한 보고로 공유할 예정이며, 이번 보고에서는 다른 도시의 최근 상황을 공유하는 것을 우선으로 정리한다.

공동 집회 당일 현장 참여자는 90여명, 온라인 참여자는 약 60여명이었다. 우선 각 올림픽 개최 도시가 지역 상황을 공유하는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과 토론이 이어졌다.


도쿄

강당 앞쪽에 스크린에 일본어와 사진으로 구성된 발표 화면이 보인다. 스크린을 향해서 배치된 탁자와 의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도쿄의 올림픽반대모임이 첫번째 순서로 발표를 했다. 이들은 2013년에 도쿄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노숙인과 빈민을 배제하고, 후쿠시마의 재해를 은폐하며 국가주의와 군사주의, 우생학적 사고를 강화하는 ‘평화의 축제’에 맞서왔다. 올림픽 개최 전부터 지속되어온 배제와 차별은 개최 시기가 다가올 수록 더욱 강화된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졌다. 도쿄올림픽 개최 기간 동안 올림픽 반대 시위에 대한 경찰의 강경 대응 기조는 더욱 악화되었다. 경찰이 도로 전체를 봉쇄하고 근거없는 체포와 구금을 일삼았으며 폭력적인 진압으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림픽 반대 활동가의 신체와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표적수사는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성화봉송 반대 시위에서 폭죽을 터트린 참가자는 139일 동안 구금되었다. 보석으로 석방된 후 이어진 재판을 거쳐 작년 9월에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동료들은 지지방청과 집회로 항의 행동을 계속했다. 집회의 현수막에는 ‘오륜(올림픽) 유죄, 폭죽 무죄”라고 적혀있었다. 

도쿄 중심 시부야 일대에서는 올림픽 명목의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었다. 일본 최대 개발기업인 미쓰이 부동산은 노숙인의 보금자리이자 오래된 도심 녹지이고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었던 공원을 철거하고 노점상을 몰아낸 후 호텔과 쇼핑몰을 지었다. 

도쿄만 옆에 수천억원을 들여 지은 경기장은 그대로 민간 기업의 손에 넘어갔다. 도쿄 시민들의 부엌이라 불리던 유서깊은 츠키지 시장은 철거되었고, 해당 부지를 포함한 개발 사업은 올림픽이 끝난 이후 본격화되었다. 

올림픽에 의해 보금자리를 잃은 노숙인은 올림픽반대모임에서 직접 파악하고 있는 수만 해도 186명에 이른다. 새로 지어진 주경기장은 1964년 올림픽 때 쫓겨난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는 공영주택단지를 또 다시 철거하고, 폭력으로 노숙인을 강제퇴거하고 공원을 부순 뒤 지어졌다. 2016년에 시행된 노숙인 강제퇴거의 부당성을 묻는 당사자들과 연대인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공원 등 공공장소를 폐쇄하고 사유화하는 일도 계속되었다. 2022년 10월에 도쿄의 미타케 공원에서 아무런 예고없이 강제집행이 이루어졌다. 공원에는 이미 올림픽 개발사업으로 두 차례 강제퇴거를 겪은 노숙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경찰과 집행관 100여명이 이른 아침 6시반 무렵 몰려와 공원을 폐쇄했고 수도를 파손했다. 공원에 머물던 노숙인들은 수도나 화장실도 쓸 수 없는 상태로 고립되었다. 가진 모든 것과 보금자리를 잃은 이들은 겨우 새로운 머물 곳을 마련했지만, 시부야 구 직원들은 이들이 자리잡은 다른 공원을 찾아와 소지품을 다시 압수하는 등 간접적인 퇴거 압박을 지속했다. 연대인들은 이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원에 머물며 밤을 지새고 함께 항의하는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노숙인 당사자이자 올림픽 반대 활동가인 도쿄의 발표자는 “올림픽은 공공사업의 탈을 쓴 공공 파괴사업이다”라고 말한다.


나가노 

다소 어두운 연단에서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쓴 한 남성이 발표 내용이 적힌 종이를 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199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나가노에서 올림픽에 맞서온 발표자는 40여년 전과 같은 일이 평창에서도, 도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림픽 관련 사업들의 구체적인 계획, 의사 결정 과정 등 어떤 것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와중에 주류 언론이 유치 홍보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민들이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올림픽이 ‘시민의 염원’이 되어버리고 만다. 유치 당시 공표된 초기 예산은 추진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불과 몇 주 동안 사용한 값비싼 시설들은 수십 년에 걸쳐 폐허가 되어가며 지역에 골치아픈 재정 문제로 남겨진다. 

올림픽 개최 이후 나가노의 재정 상황은 악화되어갔고, 주민 대상 공공서비스의 규모와 질은 점차 나빠졌다. 최근 나가노시는 올림픽 적자를 오랜 시간에 걸쳐 청산했다고 공표했지만, 빚을 나가노현과 중앙정부에 떠넘겼을 뿐이다. 이는 평창올림픽 개최 직후 강릉시가 올림픽 지출을 모두 해소했다고 공표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시가 배포한 자료는 강릉시 산하 구 단위의 재정을 반영한 것일 뿐이다. 강원도, 강원도개발공사, 중앙정부 등 올림픽에 공공재정을 투입한 단위를 포함한다면 막대한 적자만이 남게 된다. 

하계올림픽과 달리 동계올림픽은 대체로 도심과 떨어진 지역에서 열리는 경향이 있기에 유치 홍보 과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와 같은 선전에 큰 힘이 실리곤 한다. 나가노의 발표자는 평창올림픽이 개최된 강원도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인구감소 위기 등의 문제에 직면한 나가노의 현실을 언급하며 몇 주간의 야단법석을 위해 지역의 10년 뒤, 20년 뒤의 삶을 팔아넘겨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또 지역의 미래는 바깥의 힘 센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우리 지역에 필요한 일이 있다면 올림픽 같은 것에 돈을 낭비하며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기지 말고 직접 예산과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가노 올림픽 유치는 당시 호황인 경제 상황을 바탕으로 일본 전역에 100개 이상의 리조트를 세우는 대대적인 개발 계획과 맞물려 추진되었다. 일본자연보호협회, 세계자연보호기금 일본지부 등 거대 환경단체가 올림픽 유치에 협력했고, 자연보호구역에 속한 고원지대의 산림이 파괴되었다. 올림픽 주최 측은 개최 이후 산림의 원상복원을 약속했으나 생태적 고려가 부족한 상태로 표토와 식생을 단순 이식했을 뿐이다. 이후 나가노현에서 오랫동안 지속해온 모니터링 자료를 보더라도 희귀 식생과 멸종위기종의 서식지가 전혀 회복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나마 나가노에서는 경기장 공사 전 표토를 채취하여 보관하고, 서식 식물종의 종자를 채취하는 등 형식적이나마 복원 계획 이행의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이 개최된 가리왕산에서는 복원 계획 수립은 커녕 사전작업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벌목이 진행되었기에 이정도 수준의 산림 조성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삿포로

강당 앞쪽에 스크린에 일본어와 사진으로 구성된 발표 화면이 보인다. 스크린을 향해서 배치된 탁자와 의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있다.

삿포로의 발표자는 1972년에 개최된 올림픽에 대한 삿포로 대중의 인식이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라고 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 역시 중심부가 아닌 지방에서는 공통적으로 지역 쇠퇴에 의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기에 실제 삿포로에서 다시 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이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중 특히 많은 이들이 우려한 것은 올림픽 유치 추진 방식의 문제다.

여러 추정치를 참고해보면 2030년 올림픽 개최에 2천억 엔에서 3천억 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삿포로의 재정 상황은 지난 10여년 동안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우리 지역에 올림픽을 개최할 재정적 여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삿포로시는 올림픽 개최를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 기후변화 대비, 공생사회 실현을 이룰 수 있을 거라 홍보해왔다. 이러한 것이 우리 지역에 필요하다면 올림픽 없이 더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삿포로시는 1972년 올림픽의 긍정적 유산을 함께 홍보하며 당시 올림픽 개최를 통해 지하철 등 도시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올림픽이 여러 개최지에서 허황된 올림픽 유산 신화를 만들기 위해 반복해 온 거짓말 중 하나다. 삿포로시는 올림픽 유치 이전부터 지하철 건설을 포함한 도시 근대화 게획을 세웠다. IOC는 1972년 하계올림픽 개최를 통해 뮌헨에 지하철이 건설되었다는 똑같은 거짓말을 했다. 뮌헨은 1930년대에 이미 지하철 건설 계획을 세웠고, 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일기 이전에 이미 준공에 들어갔다. IOC는 마찬가지로 1988년 하계올림픽을 통해 한국에 민주화가 완성되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민주화는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희생으로 이룬 성취이며, 오히려 민주화 운동에 함께한 이들은 빈민을 배제하고 전체주의적 억압을 일삼는 올림픽 개최에 반대했다. 

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본격화되며 삿포로시는 2022년 3월에 세 차례의 주민 의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유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후 계속해서 이 결과를 바탕으로 유치 활동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해당 조사 결과를 보면 주민 50.2~65.5%의 찬성 의향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설문의 내용과 구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 우선 올림픽 유치 홍보 문구를 써놓고 이 내용을 ‘이해했는지’ 묻는 질문을 반복하여 나열해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 다음 맨 마지막에 올림픽 유치 활동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을 배치했다. 이러한 설문 구성 방식은 마케팅에서 흔히 사용되는 것으로 ‘예스 셋트(YES-set) 화법’이라고 불린다. 딱히 부정하기는 어려운 사실에 대한 서술을 계속해 “예스”라고 연이어 말하게 한 다음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 긍정적인 대답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공공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조사를 지방정부가 실시하며 이러한 방식으로 의향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비슷한 시기에 훗카이도 신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올림픽 유치 반대 입장이 57%였다. 이후 8월에 훗카이도 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반대 응답의 비율은 더 높아져 72%에 달했다. 하지만 삿포로시는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시의원과 시민들에게, 의향조사를 통해 주민들의 입장을 충분히 확인했고 시간이 부족하기에 주민투표가 필요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삿포로시 지방자치기본조례에 의거하면 올림픽 유치 추진은 주민투표가 가능한 사안이지만, 2022년 시의회는 주민투표 제안을 부결했다. 

리우데자네이루, 로스앤젤레스, 파리에서 올림픽에 맞서온 동료들의 영상 메시지를 함께 본 후 토론이 이어졌다.


멀리 큰 빌딩이 보이는 도로 옆 보도 위에서 네 명의 사람이 골판지 등으로 만든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올림픽 반대의 구호가 적혀있다.

횡단보도가 있는 넓은 도로 옆 보도 위에서 세 명의 사람이 큰 배너를 들고 있다. 배너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올림픽 반대의 구호가 적혀있다. 배너를 든 사람들 오른편과 멀리 길 건너편에는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보행자들이 서 있다.

어두운 밤 조명으로 장식된 구조물 앞에서 두 사람이 천과 골판지로 만든 피켓을 들고 서 있다. 피켓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올림픽을 폐지하라', '올림픽은 어디에도 필요없다', '삿포로 올림픽 유치를 멈춰라'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공동 집회가 끝난 후 다른 지역의 동료들과 함께 삿포로 역 앞 교차로로 이동하여 올림픽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는 시간을 가졌다. 역 앞을 지나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으며 함께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작년의 공동 집회 이후로도 계속 올림픽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공동행동을 꾸려온 삿포로 사람들의 노력으로 203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삿포로 올림픽 유치 추진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도 올림픽의 문제가 이어지고 있기에 우리는 계속해서 올림픽 문제를 함께 이야기하고 연대해나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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