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 복원 촉구 기자회견 (8.12) 발언문

2024년 8월 12일에 '녹색연합'과 '산과 자연의 친구 우이령사람들'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경기장 건설 명목으로 파괴된 가리왕산의 복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주최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가하여 발언한 내용을 아래에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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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지역 산림을 개발하려는 사업자들은 ‘주민들의 이익’을 내세우곤 합니다. 설악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이 그러했고, 가리왕산 복원을 반대하는 이들이 그러합니다. 그렇다면 가리왕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살아가던 숙암리 주민들은 어떤 이익을 얻었을까요? 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며  마을이 있던 자리는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었습니다. 올림픽 손님들을 위한 호텔을 지어야 한다며 주민들은 아무런 이주대책이 수립되지 않은 혹독한 겨울에 쫓겨났습니다. 올림픽을 위해 서둘러 지어야 한다던 호텔은 어이없게도 올림픽, 패럴림픽이 모두 끝나고 석달넘게 지난 초여름에서야 겨우 공사를 마치고 개장했습니다. 


평창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직후 제정된 올림픽 특별법에 의거해 지정되었던 ‘올림픽 특구’에 해당하는 건설 사업은 올림픽 개최에 필요한 시설을 확충한다는 목적을 위해 각종 예비 조사 및 행정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생락하는 특혜를 적용받습니다. 법의 본래 취지를 생각하면 특구 사업은 올림픽이 막을 내리는 동시에 끝나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강원도 곳곳에서 특구 사업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 오히려 사업 대상지를 확장하여 2차 시행계획이 발표되었으며 적어도 2032년까지는 계속될 예정입니다. 백두대간 보호구역, 도립공원 권역 등이 사업 대상지에 포함되었으며, 올림픽을 위해서라며 주민들로부터 강제수용한 토지에 리조트와 호텔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올림픽 특구’라는 이름으로 각종 면책과 특혜를 받아 통상의 행정 절차에 의해서라면 허가받기 어려운 사업들을 진행하며 이익을 얻는 이들은 소수의 투자 기업, 몇몇 대형 건설사들 뿐입니다. 반면 주민들은 경포호수와 경포대로 이어지는 자연경관을 빼앗기고, 오래된 해안가 숲이 잘려나가는 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제 막을 내린 파리 올림픽은 신규 건설과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친환경 올림픽’ 개최에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되곤 합니다. 그러나 올림픽 개발사업, 또 이와 연계된 ‘그랑파리’광역 개발사업으로 유럽연합 자연보호 구역이 파괴되었고,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커뮤니티 가든이 철거되었으며, 타히티 해안의 대체불가한 산호들이 파괴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공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정을 내리는 데에 정작 이로 인해 직접 영향을 받는 이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커뮤니티 가든을 가꾸던 이들도, 보호구역 인근 주민들도, 타히티의 사람들도 가능한 법적, 사회적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파괴를 막아내려 했습니다. 파괴를 최소화하는 대안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공공영역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갖고 있지 않은 임의단체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최대의 이윤 창출에만 몰두하는 사업자들, 부동산 투자자들, 그리고 공적 책무를 외면한 선출직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무엇이 어떤 과정을 통해 결정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올림픽이 부여하는 ‘예외적 특권’에 기반해 우리 사회의 행정과 제도를 무력화하는 개발사업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괴가 자행되는 일은 거의 모든 올림픽 개최지에서 반복되어 왔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례로 런던올림픽 연습 경기장 건설로 파괴된 유서깊은 공업단지와 레아 습지가 그러했고, 112년만에 다시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골프 경기장 건설로 파괴된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펜디 석호 보호구역이 그러했습니다. 런던에서도 시민들은 습지를 파괴하지 않고 대회 규정에 맞는 연습 경기장 사용이 가능한 대안을 제시했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기존의 골프장으로 충분히 대회 개최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강행되며 습지는 콘크리트로 덮혔고, 석호에 살던 300여종의 멸종위기종은 서식지를 잃었습니다. 가리왕산에 굳이 알파인 스키장을 짓지 않아도 올림픽 규정상 아무 문제 없이 대회를 진행할 수 있기에 분산개최 등의 대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던 많은 분들은 기시감을 느끼실 거라 생각합니다. IOC를 비롯한 올림픽 주최 측은 대안이나 개혁안, 우리 미래를 지키기 위한 방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면 올림픽이 끝나고 이 모든 문제를 책임져야 하는 것은 새로운 이윤을 찾아 다음 개최지로 떠나가는 올림픽 사업자들이 아니라, 여기에서 계속 살아나갈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올림픽 개최지와 마찬가지로 파리에서도 올림픽의 사회불의와 환경파괴에 저항하는 행동이 계속되었습니다. 올림픽이 막 시작되었던 7월 27일에 시민불복종 행동 ‘금지된 경기(Jeux interdits)’를 준비하던 멸종저항파리(Extinction Rebellion Paris)와 약탈2024(Saccage 2024)의 활동가들, 이들과 동행하던 취재진 등 50여명은 아무런 행위를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8월 8일에 해당 단체의 활동가들은 센 강 인근을 중심으로 올림픽 사업에 영향받은 지역들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려 했으나 동행한 취재진을 비롯하여 스무명 가량이 다시 체포되어 구금되거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저항행동을 억압하거나 사회 취약계층을 몰아내는 방식, 그리고 환경을 파괴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민주적 의사소통을 배제하며, 공적 자원을 동원하여 극소수에게 이윤을 안겨주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그렇기에 사회정의와 생태정의, 그리고 민주주의는 함께할 수 밖에 없으며, 그 곳에 올림픽이 들어설 자리는 없습니다. 그동안 동계올림픽으로 파괴된 많은 산과 숲이 있었지만, 가리왕산처럼 곤돌라 철거 약속까지 완전히 무시한 채 복원의 시늉조차 하지 않고 산림개발을 주장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가리왕산을 둘러싼 모든 약속은 무참히 깨어져 왔습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 하나, 약속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가리왕산 복원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계산기를 또 다시 두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보호산림의 가치는 현재의 경제적 가치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있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미래 세대가 마땅히 누릴 권리를 침해하고 생존을 위협할 권한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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