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올림픽 개최지 2022년 답사 보고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과 2017년 동계아시안게임을 비롯한 국제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고 상대적으로 동계 스포츠 저변이 넓은 지역이다. 평창올림픽 주최 측은 개최 이전부터 삿포로를 성공적인 개최 및 유산 활용 사례로 여러 차례 언급해왔다. 2030년 동계올림픽 유치가 추진되는 동안 삿포로시는 지난 개최지로서의 이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재유치 추진의 당위성을 주장해왔다. 기후위기로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기후 여건에 부합하는 지역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삿포로 동계올림픽 유치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삿포로에서 조차도 지난 올림픽의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올림픽 유치에 대한 거센 저항이 일어왔다. 실제 개최지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져왔는지, 또 지난 올림픽 유산을 활용하여 새로운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2022년 7월에 실시한 1972년 삿포로 동계올림픽 개최지 답사를 통해 살펴보자.
우리는 도쿄, 나가노의 동료들과 함께 답사를 진행했다. 도심지에서 한 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여 도착한 곳은 스키, 스노보드 등의 경기가 개최된 테이네 리조트다. 현재 골프장, 스키장 등이 운영되고 있는 리조트의 진입 도로 등 기반 시설과 부지 조성 공사는 올림픽 개최를 명목으로 공공이 부담했다. 그러나 개최 이후 운영권과 수익은 일본 전역에 26개 이상의 계열사와 리조트를 소유한 대기업인 카모리 관광 주식회사가 가져갔다.
다운힐 스키장 하단에는 올림픽 하우스가 남아있다. 이 스키장은 올림픽 기준에 맞추기 위해 통상적으로 운영되는 스키장보다 더 긴 슬로프를 조성해야 했고, 보호등급 1급에 속하는 상부 산림이 훼손되었다.
올림픽 성화대가 설치된 스키장 슬로프 옆으로는 남겨진 곤돌라가 있다. 이 곤돌라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으며 바로 옆에 신축한 곤돌라가 설치되어 있다.
1972년 올림픽을 위해 지어진 루지・봅슬레이 경기장은 2000년 1월에 폐쇄되었다. 출발 지점에 있었던 골 하우스는 2017년까지 방치되다가 철거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것은 건물 기초와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삿포로의 루지・봅슬레이 경기장은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것으로 다른 경기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양호한 입지와 조건을 갖추었지만 간간히 개최되는 대회로는 막대한 유지비를 충당할 수 없었고, 폐쇄될 때까지 연간 1억 엔의 보조금을 쏟아부어 겨우 유지해왔다.
위 사진의 장소는 경기 코스 출발 지점으로 추측된다. 1972년 당시 삿포로에서는 별도의 냉각장치 없이 천연 눈과 얼음으로 코스를 조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후적, 지리적 여건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도 경기를 개최하기 위해서 이후로는 냉매를 이용한 조성 방법이 점차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코스 조성 방식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도 문제지만 냉매의 안전성 문제도 컸다.
인공 얼음을 만드는 방법은 간접 냉각 방식과 직접 냉각 방식으로 나뉜다. 간접 냉각 방식은 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에틸렌 알코올을 냉매로 사용한다. 반면 직접 냉각 방식은 암모니아를 냉매로 사용한다. 노르웨이 릴레함메르와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동계올림픽 유치에 강한 저항이 일었던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암모니아 냉매를 통한 인공 얼음 조성이 환경적으로도, 주민 안전 측면에서도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다.
삿포로시는 나가노의 경기장을 활용하여 새로운 올림픽을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냉매에 대한 우려로 100% 전기를 사용한 냉각 방식도 고려하고 있었다. 나가노의 경기장은 1998년 올림픽 개최 당시 101억 엔을 들여 건설한 후 연간 유지비 2억 엔을 소요하며 방치되다가 2017년에 폐쇄되었다. 이 시설을 다시 경기장으로 사용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다.
오쿠라야마 스키 점프 경기장은 현재 전망대로 쓰이고 있다. 이를 다시 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공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공사에는 시부담 78억 엔을 포함하여 총 100억엔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가노의 스키 점프 경기장 신축 비용은 29억 4300억 엔으로 계획되었고, 이후 IOC의 일방적인 설계 변경 요구로 결국 86억 엔이 지출되었다. 이와 비교해 보아도 삿포로의 기존 시설 활용안은 새로 짓는 것 보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 게다가 100억 엔이라는 예산도 실제로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경기장 맞은편에 위치한 부대시설은 2020년에 리모델링을 거쳐 올림픽 박물관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공사에만 6억 5천만 엔이 소요되었다.
마코마나이 올림픽 단지는 1972년 올림픽 선수촌으로 건설된 후 민간과 공공이 공동으로 소유・운영하고 있는 아파트다. 단지 내부에는 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여 조성된 파르테논 풍 조형물과 공원이 있다.
단지 인근에는 육상 자위대 주둔 기지가 있다. 해당 지역에는 미군기지가 위치해 있었고 기지 부지가 반환되며 1960년에 자위대 기지가 들어섰다. 당시에는 인근에 주택지가 없었지만, 1972년 올림픽을 앞두고 선수촌 건설과 함께 인근 지역이 개발되며 주택지가 형성되었다. 기지 맞은편에는 초등학교가 위치해있고, 어린이들은 장갑차와 살상무기를 보며 지나다닌다.
개회식과 빙상 경기가 진행된 아이스 아레나는 현재 부동산 개발회사인 세키스이하임의 이름이 붙어있다. 운영권을 가진 민간 단체인 훗카이도 체육문화협회가 부동산 회사와 명명권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다시 올림픽 경기장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부담 4억 엔을 포함하여 총 30억 엔 가량의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새로운 올림픽 유치 계획에서 개・폐막식이 진행되는 주경기장으로 사용하려 했던 삿포로 돔 일대를 재정비하는 데에만 시부담 24억 엔을 포함하여 총 40억 엔 가량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1972년 올림픽을 위한 빙상 경기장으로 지어진 츠키사무 체육관이 남아 있지만 삿포로시는 새로운 올림픽을 위해 시부담 228억 엔을 포함한 총 390억 엔을 들여 ‘신 츠키사무 체육관’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체육관을 함께 사용한 후 기존의 경기장을 철거할 계획이지만, 이는 재건축이므로 신규 건설사업이 아니고 기존 시설 활용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도쿄 하계올림픽에서 높은 건설비로 비판을 받은 아리아케 아레나의 공사비가 370억 엔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경기장 건설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삿포로시는 신축 및 철거 계획과 더불어 일대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근처에는 1042가구가 사는 시영주택단지가 있다. 그 중 790가구의 보금자리인 23개 동이 재개발 계획에 포함되었다. 사업 계획에 ‘주민 재정착’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구체적인 방안과 절차, 규모는 명시되지 않았다.
가리왕산과 마찬가지로, 알파인 스키 경기장이 조성되며 국립공원 특별보호구역 내에 속한 산림이 훼손된 에니와 산은 삿포로시 남부 외곽에 위치해있다. 답사 당시에는 인근 도로가 통제되어 접근할 수 없었으며, 위 사진은 2016년 훗카이도 신문사가 촬영한 모습이다.
1972년 올림픽 주최 측은 개최 이후 즉시 시설을 철거하고 천연갱신(天然更新, 한국의 경우에 비교하면 원상복원에 해당)할 것을 조건으로 1966년 국립공원 심의회의 승인을 받아 1968년부터 1971년까지 경기장 공사를 진행했다. 벌목 면적은 43.4헥타르, 그 중 복원 대상이 되는 면적은 32.2헥타르 가량이었다. 복원 계획은 올림픽 개최가 모두 끝난 1972년 6월이 되어서야 수립되었다. 그런데 당초 복원의 목표였던 ‘천연갱신(원상복원)’이 ‘식림(단순 식생 이식)’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1973년까지는 조직위에서 복원 사업을 진행했고, 조직위가 해산한 1974년부터는 일본체육협회와 훗카이도로 차례차례 복원 사업이 이관되었다. 1986년까지 총 2억 4천만 엔을 들여 복원사업이 이루어졌다. 지주 및 기초 시설 등 일부 설비는 여전히 남겨져 있다. 당시로부터 40여년이 지난뒤 실시된 모니터링에 의하면 단순 이식한 식생 조차도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새로운 숲이 자리잡으려면 앞으로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된다. 에니와 산 복원 사업을 올림픽 최초의 환경보호조치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일본스포츠협회의 연구원 조차도 현재의 숲 상태가 경기장 공사 이전의 상태로 복원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도심지를 벗어나 차량으로 답사를 진행하는 동안 외곽 지역의 도로 상태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역 노조 관계자는 강설량이 많은 지역 특성상 동계 도로 관리에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시에서 점차 제설 예산을 줄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통해 모든 것을 마법처럼 훌륭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업자들은 누가 어떤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 누가 어떤 이익을 얻는지, 그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말하려 하지 않는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은 일은 올림픽의 덕분이라고 쉽게 함부로 말하지만, 올림픽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더나은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며 제시하는 계획들이 나태한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올림픽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들은 모든 개최지마다 반복해서 벌어져왔다. 하지만 올림픽 사업의 주인들은 아무렇지 않게 거짓된 역사를 만들어 자신의 사업을 지속할 당위를 스스로 부여해왔다. 우리는 단지 개최지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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