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올림픽 개최 이후 1년, 계속되는 올림픽의 기만에 맞서는 동료들과 연대하며
2018년 동계올림픽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나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드라마틱한 경기 장면, 스타 선수, 승리와 시상의 순간, 그리고 평화와 화합이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최지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가 기억하는, 또 지금도 겪고 있는 현실은 티비에 중계된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평창올림픽이 개최되던 2018년 2월, 올림픽 주경기장이 위치한 올림픽 플라자 바로 옆의 교차로 한 가운데에서 건설노동자들이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각종 올림픽 홍보 행사, 올림픽 관련 시설 공사 등에서 일한 건설노동자들 중 천여명이 약 800억 원에 달하는 임금을 못받았습니다. 경찰이 작은 천막 하나 치지 못하게 해서, 노동자들은 침낭과 매트에 의지해 추위를 견뎠습니다. 한 건설노동자는 “우리도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원했었다. IOC 위원들이 방문한다고 해서 새벽부터 길거리를 청소하고 국기를 흔들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과 노동자들의 고통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올림픽에 지장을 주지 말라”고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은 올림픽이 폐막하는 날까지 단식농성을 이어갔지만, 어떤 언론도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여타의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평창올림픽 주최 측 역시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산업 부흥’을 선전했습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이 운영하는 관광 사업체들은 오히려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주요 설상 경기가 개최된 리조트는 올림픽 개막 직전에 경기장 외에 모든 슬로프의 영업을 중단한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습니다. 2018년이 “개업 이후 가장 힘든 시기 였다”고 말한 주민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림픽조직위원회, 지방정부, 중앙정부까지 올림픽과 관계된 조직을 전부 찾아가 대화를 요청했지만 모두가 이들을 외면했습니다.
알파인 스키 경기가 개최된 가리왕산에는 500년 동안 보존되어온 국가보호산림이 있었지만, 단 3일 동안의 스키 경기를 위해 10만 그루의 나무가 베어졌습니다. 산기슭에 살던 50여 가구의 주민들 역시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들이 마을에서 강제이주된 뒤, 그 자리에는 ‘휴식’과 ‘치유’를 내세운 고급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평창패럴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장애인권 활동가들은 “평등없이 평화없다”라고 외치며 패럴림픽 개회식장, 경기장을 찾아 차별없는 사회를 위한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패럴림픽이 개최되는 장소에서도 점자 블록, 수어 통역과 자막, 경사로, 저상버스가 아예 없거나 부족했습니다. 평창이 위치한 강원도의 12개 지자체에는 아직까지도 휠체어 이용자가 탑승할 수 있는 저상버스가 단 한 대도 없습니다. 강원도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복지예산을 먼저 삭감했습니다. 패럴림픽 개최에 쏟아부은 돈은 지역 대중교통, 공공시설에서의 이동권과 접근권 보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했습니다.
패럴림픽이 끝난 이후, 올림픽조직위원회는 빠르게 해산되었습니다. 남겨진 시설들에 의해 재정 적자가 누적되고, 올림픽의 문제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동안에도 ‘올림픽 유산’을 계승한다는 기념사업들은 착실히 진행되었습니다.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소요되는 기념사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투기 자본과 건설사에게 강제 토지 수용의 권리와 각종 특혜를 부여하는 ‘올림픽 특구 사업’ 역시 계속되며 강원도 곳곳에 리조트와 호텔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된 2018년은 1988년 서울하계올림픽이 개최된지 30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평창올림픽 개최 전부터 서울올림픽을 미화하는 대규모 기념사업들이 벌어졌습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 전역에서 72만명이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이들이 겪은 강제퇴거는 심각한 폭력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강제철거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은 1986년 한 해 동안만 해도 6명에 달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철거민들과 연대하며 올림픽 반대 활동을 펼쳤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말까지 전국적인 규모로 ‘사회정화작업’이 진행되며 최소 1만 6천여명이 여러 시설에 강제구금되었습니다. 그 시설 중 하나였던 ‘형제복지원’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피해보상과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88 서울올림픽 기념사업’은 당시의 올림픽에 찬사를 보내고, 2018년 평창올림픽 개최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만연했던 폭력과 억압은 ‘부수적인 피해’ 정도로 짧게 언급되었으며,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을 통해 이루어낸 민주화의 성취는 올림픽의 성과로 왜곡 선전되었습니다. 도쿄올림픽 개최 이후 1년 동안의 상황을 보며 우리는 강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도쿄올림픽의 환상을 조작해내며 추진되고 있는 2030년 삿포로 올림픽 유치는 우리가 겪은 일들을 상기시켰습니다. 올림픽을 추진하려는 측은 이 낡고 노골적인 선전 행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여기는 듯 합니다.
우리는 7월 18일에 삿포로에서 진행된 ‘올림픽을 멈춰라, 4도시 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삿포로시는 2030년 올림픽 개최를 위해 1972년 동계올림픽 때 조성했던 시설을 활용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치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새로운 경기장을 짓는 수준의 막대한 개축비가 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삿포로시는 주민투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대해서, 여론조사로 의향을 확인할 수 있으니 주민투표는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민투표를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해당 여론조사는 사실상 시민의 의향을 날조하는 과정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만큼 기만적인 내용으로 가득했습니다. 2030년 삿포로 올림픽 유치 과정은 그 자체로 불투명하고 반민주적인 올림픽 산업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 동네에 새로운 올림픽이 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개최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림픽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공적영역을 침식하며,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내모는지를 우리는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것을 이야기합시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더욱 넓혀 나갑시다. 어느 곳에서도 올림픽 산업에 우리의 미래를 내어주는 일이 없는 날까지 함께 연대합시다.
2022년 7월 24일
평창올림픽반대연대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