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폐지하라

가운데 그림이 있고 위에 STOP, 아래에 OLYMPIC POLICING이라고 적혀있다. 그림은 철조망이 오륜기 형상을 하고 수갑처럼 사람의 양 손을 옥죄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배경읜 흰색, 그림과 글씨는 검은 색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개최된 2018년은 서울에서 하계올림픽이 개최된지 만 30년이 되는 해였다. 여러 올림픽 개최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대규모의 개발사업과 강제철거가 이루어진 서울에서 1986 아시안게임과 1988 올림픽을 준비하는 동안 72만명 이상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경찰, 건설기업, 용역깡패가 협력하는 개발사업의 광풍 속에서 1986년 상계동에서만 6명의 철거민이 목숨을 잃었다. “올림픽 등에 대비, 관광객들에게 깨끗한 인상을 주고 국민들의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행한 “사회 정화” 활동으로 1만 6천여명이 적법한 절차도 없이 무작위로 잡혀가 전국 36개 시설에 강제 구금 되었다.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형제복지원에서 이루어진 무임금 강제노역, 학대, 폭행이 알려지고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이는 지금까지 한 사람도 없다. 올림픽의 억압은 올림픽이 막을 올리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지워져갔다. 주최 측은 올림픽으로 인해 “민주주의와 화합”이 실현되었다는 선전을 발빠르게 해 나갔다. 2018년에 여러 기관에서 서울올림픽을 긍정적으로 회고하는 각종 기념 사업을 시행했고, 실제했던 올림픽 재해는 ‘부수적인 부조리’로 가볍게 스쳐지나가듯 언급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88 올림픽’이라는 단어를 통해 유쾌하고 즐거운 이미지를 더 쉽게 떠올린다. 올림픽으로 이익을 얻은 자들이 오랫동안 큰 목소리로 과오를 덮는 선전을 꾸준히 해 오는 동안, 올림픽 재해로 고통을 겪은 자들의 목소리는 지워졌다. 평창올림픽 역시 막이 오른 시점부터 지금까지 부지런히 올림픽 재해를 가리기 위한 기념사업에 지대한 노력을 기울여오고 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동안 우리가 평창, 정선, 강릉 등지에서 목격한 것들은 방송을 타고 전달되는 화려한 축제와 거리가 멀었지만, 올림픽 재해의 실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는 적었다. 지금 올림픽 유산을 계승한다며 추진되고 있는 많은 사업들 중 상당수는 평창올림픽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남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판데믹 속에서 한 차례 연기된 후 강행개최된 도쿄 하계올림픽이 지나간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우리의 기시감을 일깨운다. 새로운 감염병의 확산으로 의료체계와 사회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무엇보다 우선시 되었던 것은 올림픽 개최였다. 예산, 인적자원, 의료진, 검사 시스템, 백신은 일본의 주민들이 아니라 올림픽 운영에 먼저 배치되었다. 올림픽·패럴림픽이 개최된 8월에서 9월 사이에 자택 요양 중 사망한 사람은 전국에서 202명, 8월 한 달 도쿄에서만 44명이었다. “부흥”을 내세워 후쿠시마의 재해를 무책임하게 덮어버리고, 수년에 걸쳐 가장 취약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부터 쫓아내면서 차별과 배제를 심화시키는 올림픽 산업에 맞서서 많은 사람들이 저항의 행동을 이어갔다. 이들에 대한 억압은 노골적이었다. 활동가에 대한 표적수사로 주거지와 신체를 압수수색하고, 평화적인 반대 시위를 강압적인 폭력으로 진압했다. 성화봉송 경로에서 올림픽 반대 집회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사람에 대한 재판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라며 도입한 첨단 안면인식 시스템과 공모죄 처벌법, 차별적 입관법 (한국의 출입국관리법에 해당) 개정안은 일본 사회에 계속 남겨져 있다. 올림픽이 막을 내린지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올림픽 브랜드를 지키기 위한 선전 활동은 이미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주최 측은 노숙인 배제, 전임 모리 요시로 위원장의 여성비하적·인종차별적 행위, 강화된 감시와 처벌 체계, 후쿠시마 재해를 지우려는 시도 등은 모두 덮어두고 “다양성과 조화, 평등”의 실현으로써 올림픽을 찬양하는 메시지를 열심히 생산해내고 있다. 또한 도쿄올림픽 공식기록영화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이름을 내세운 프로그램을 통해 “올림픽 반대 시위는 돈을 받고 동원되었다”는 사실 왜곡을 공영 방송으로 내보낸 뒤, 당사자들에게 제대로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도쿄도가 올해 7월에서 8월 사이에 올림픽 개최 1주년 기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배정한 예산은 8억엔 (약83억원)가량이다. 

2008년 베이징 하계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강제퇴거된 사람의 수는 120만명이 넘는다. 주거는 인권이며 생존이다. 삶을 위협받은 많은 사람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그들에 대한 처벌은 가혹했다. 합법적 시위를 조직해 세입자의 목소리를 전하던 활동가는 4년형을 선고받았고, 올림픽 개최를 핑계로 기간이 연장되어 총 6년 동안 구금된 후에 풀려날 수 있었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모두를 위한 올림픽”에 의문을 품은 티베트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영화를 제작한 티베트인 감독은 촬영 직후 체포되어 6년이 지난 2014년에 석방되었다. 이후에도 우리는 중국 정부가 자행하는 탄압과 학살에 대한 보고와 이에 맞서는 저항을 목격해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만이 눈을 감고 있었던 듯하다. IOC는 3주 동안 중국 전역에서 인권 조사단의 시찰을 완료한 후, 2015년에 베이징을 다시 개최지로 선정하며 “올림픽이 자유의 시대로 나아가는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 IOC는 각국의 보이콧 표명이 “올림픽 정신을 심각하게 왜곡”한다고 비판하지만, IOC야말로 스스로가 규정하는 “인간의 존엄성 보존”을 해친 당사자이자 인권 침해의 공범이다. 그들은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한 2001년 당시에도 올림픽 개최가 “인권 상황과 정치적 자유를 향상시킬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하계올림픽 개최지에서 동계올림픽을 또 다시 개최하기 위해, 이미 심각한 물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과 농민들 몫의 수자원은 막대한 양의 인공눈을 만드는 데에 동원되고 있다. 국립 자연보존구역에 위치한 알파인 스키장 건설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주최측은 국립공원의 구역을 재설정하여 경기장이 더 이상 보존구역 내에 위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역의 생태계와 수자원을 담보로 삼아 대규모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번 올림픽 역시 지속가능성을 내세워 재생 가능 에너지 사용과 수소 동력 운송수단을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함께 하는 미래(一起向未來)”라는 슬로건 하에 시작되는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는 지난 하계올림픽 개최 당시 NBC 방송사 최고경영자(CEO)인 제프 쉘(Jeff Shell)의 발언을 떠올린다. 올림픽 독점중계권을 가진 NBC가 도쿄올림픽 개최를 통해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올림픽이 시작되면 전부 잊고 모두가 즐긴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IOC를 포함한 올림픽 산업의 협력 체계가 왜 이렇게 나태한 기만과 뻔뻔한 선전을 계속하는지 잘 보여준다. 여느 억압적 정권과 비교해보아도 뒤지지 않는 반민주적인 조직과 불투명한 의사결정 방식을 가지고 있는 IOC는 또 다시 올림픽 워싱(Olympic Washing)을 통해 스스로의 고수익 사업을 지키려고 한다. 올림픽을 통해 이익을 얻는 각 개최지의 권력자들은 ‘저 곳’의 올림픽은 나쁜 것이고 ‘이 곳’의 올림픽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의 실현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좋은 올림픽 따위는 없다. 모든 올림픽은 각 개최지 사회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미래를 파괴하며 최대의 이윤을 쥐어짜낼 뿐이다. 우리는 여러 개최지에서 억압과 파괴를 서슴치 않는 올림픽 산업의 협력자들에게 함께 맞선다. 반복되는 올림픽 재해의 폐허 속에 남겨진 우리는 어떤 것도 잊지 않으며, 올림픽 없는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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