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개최지 2021년 하계 답사 보고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패럴림픽이 끝난지 만 3년이 넘게 지나고, 다음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최가 멀지 않은 지금도 개최지에서는 올림픽 재해가 계속 진행 중이다. 올림픽 개최 과정에서 사라진 공적 자원, 파괴된 숲, 지역민과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사이에 ‘올림픽 유산’이라는 이름의 이권 사업만은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각각 수천억원을 들여 지었고 해마다 수십억원씩 유지관리비를 잡아먹고 있는 올림픽 시설물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시설 활용을 명목으로 터무니 없는 새로운 사업들이 거듭 추진되고 있다. 올림픽을 명분으로 내세워 특별법에 의거해 여러 특혜 속에 추진되었으나 실상 올림픽 개최와 그다지 상관도 없었던 각종 토건 사업들에 대한 의혹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
공적 책무 방기와 올림픽 유산
오직 올림픽 유치만을 목적으로 1조 6800억원의 공적 자금을 들여 조성한 알펜시아 리조트는 지금도 공기업인 강원도개발공사의 자금으로 운영된다. 건설비는 물론이고 유지비도 감당할 수 없었던 강원도개발공사는 알펜시아 완공 이후 12년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부채에 시달리며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어왔다. 올림픽 특별법에 의거해 개최 예산의 75% 이상을 중앙정부가 부담했지만 막대한 올림픽 비용은 강원도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켰다. 올림픽 유치 이전에도 전국 지자체 평균 재정자립도인 50%에 미치지 못하는 27% 수준이던 강원도의 재정자립도는 올림픽 유치 이후 점차 낮아져 올해에는 14.3%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골칫덩이 알펜시아를 처분하기 위해 여러 차례 민간 매각 추진과 유찰을 반복해오다가 올해 6월에 진행된 다섯 번째 입찰에서 최종 인수 업체가 결정되었으나 낙찰 금액은 건설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인수 업체의 재정 여건이 불투명하여 이 금액마저 제대로 지불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방 의회는 매각 과정의 부정 입찰 여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만약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내년 2월에 잔금 지급이 완료된다고 가정해보더라도 여전히 3천억원 이상의 부채가 남게된다. 게다가 가장 경제성이 떨어지는 리조트 내 올림픽 시설은 매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제외된 시설들 중 하나인 스키점프 경기장은 상부는 전망대로 하부는 축구 경기장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최소한의 유지비도 충당되지 않는 상황이다.
알펜시아 내에 위치한 국제방송센터(IBC)는 ‘친환경 올림픽’을 내세우며 사용 후 철거할 계획으로 945억원을 들여 건설했으나 개최 이후 특별한 이유 없이 유지하기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방치되던 시설은 올해 설계를 확정하여 2024년까지 610억원을 들여 국가문헌보존관으로 고쳐 짓게 된다.
슬라이딩 센터는 개최 이전부터 활용 대책에 대한 우려가 꾸준히 제기된 대표적인 시설에 속한다. 1100억원을 넘게 들여 지었고 매년 평균 16억원의 유지비가 들어간다. 한 번 얼음을 얼리는 데에만 억대의 비용이 들기에 대표팀은 해외에서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 대표팀의 경우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슬라이딩 센터와 같은 시설은 세계적으로도 열 군데 남짓 있을 뿐이다. 건설 시 동반되는 산림 훼손의 문제, 낮은 활용도와 막대한 유지관리비의 문제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 나가노의 슬라이딩 경기장은 1998년 올림픽 이후 전혀 활용되지 못하다가 2018년에 폐쇄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은 돈을 더 들여 신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강원도청은 국비 32억 5천만원을 포함한 98억원을 들여 슬라이딩 센터에 관광객을 위한 체험 시설을 짓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수십억원을 들여 가상현실 모의 훈련시설을 건설했다. 우리가 알펜시아를 찾았을 때에는 훈련시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장비가 바삐 움직이는 공사 현장 뒤로는 3년 넘게 방치된 슬라이딩 센터가 있었다.
알펜시아처럼 주요 설상 종목이 진행된 스키장이 위치한 면온리의 주민들은 개최 당시 조직위, 평창군청, 강원도청, 중앙정부 등 올림픽과 관련된 거의 모든 기관을 찾아가 대책을 호소했다. 개최가 임박한 시점에서 조직위가 경기장 이외의 모든 스키장 폐쇄와 영업 중단을 일방적으로 고지하여, 겨울철 장비 대여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이 사실상 생업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찾아간 모든 기관은 책임지고 대책을 마련하기는 커녕 주민들과의 대화에 나서지도 않았다. 당시 경기가 개최되었던 스키장 앞 진입 도로변에는 9억원 넘는 돈을 들여 ‘평화올림픽 기념공원’이 조성되었다. ‘평화’, ‘화합’, ‘꿈’ 등 아름다운 단어와 오륜 조형물, 마스코트 조형물로 꾸며진 공원에서 주민들이 겪은 고통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평창올림픽 시설 중 상당수는 유지비 절감과 친환경 개최를 이유로 사용 후 철거할 계획이었다. 653억을 들여 지은 주경기장은 4회의 행사 후 다섯 동 중 네 동을 15억원을 들여 철거했다. 1년 이상 방치되던 한 동의 건물에는 50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기념관이 들어섰다.
평창군은 남겨진 부지와 올림픽 플라자 자리에 484억원을 들여 2023년까지 기념공원과 평화센터를 다시 지을 거라고 한다. 올림픽이 내세운 허울뿐인 가치와 약속은 어느 것 하나 지켜지지 않는다. 공공 자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핑계가 필요할 뿐이고, 한 때는 ‘친환경 올림픽 개최’이던 명분이 지금은 ‘올림픽 유산 활용’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기념관 내부를 채우고 있는 좋은 단어와 기념물들은 이러한 올림픽의 기만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듯 했다. 각국 유수의 방산업체들이 제작한 성화를 소개하는 판넬들이나, 강원도 재정에 부담을 주며 방치되고 있는 시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전시물 등 평화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전시관에는 평창올림픽에 대한 찬사로 가득했다.
평창올림픽 개최 당시 2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와 군 인력은 무급으로 필수적인 업무를 맡았다. 명백한 이권 사업에 무급 노동이 동원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들의 처우 문제는 더욱 심각했다. 식사와 교통편, 숙소의 여건은 최소한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휴게시간 역시 보장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사태 해결을 호소하기 위해 개최 기간 동안 60건이 넘는 청와대 청원을 보냈고, 전체 인력의 6분의 1은 견디다 못해 폐회 전에 그만두었다.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폐회식 연설에서 뻔뻔스럽게 자원봉사자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기념관에 남아 있는 것은 한겨울에 찬물로 씻어야 했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었던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착취의 기록이 아니라 토마스 바흐 위원장의 인사말 뿐이었다.
남겨진 시설들의 사정은 강릉에 있는 경기장들도 그리 다를 것이 없다. 오가는 이를 찾기 힘든 강릉 올림픽 파크에는 빙상 경기장들이 모여있다. 올림픽 개최가 임박했을 때부터 강릉시는 올림픽을 계기로 강릉을 빙상스포츠의 도시로 만들겠다며 2년 동안 국비 40억원을 들인 ‘빙상인구 10만 율곡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각 경기장을 빙상스포츠의 중심지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공언해왔다. 경기장에서는 가끔 선수들의 훈련이나 경기가 진행되긴 하지만 시설을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며, 경기장으로써의 활용 빈도가 확대될 전망도 어둡다. 지금까지 경기장 본연의 목적과 무관한 공연이나 행사, 촬영 등에 대한 대관을 가끔 진행해 왔으나 각 천억원 이상을 들여 지은 경기장에서 매년 수십억원씩의 적자가 누적되는 것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남겨진 시설들의 문제는 매번 올림픽이 개최될 때 마다 각 개최지에서 반복되어왔다. 평창올림픽 역시 올림픽 시설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인 막대한 건설비, 불투명한 재정 흐름, 현저히 낮은 활용도, 유지 관리 주체와 비용에 대해 본격적인 유치 움직임이 일던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지적되어왔다. 관리 주체가 강원도와 강릉시의 공공시설인 경기장 7곳에서 개최 이후 3년 동안 누적된 적자는 135억원이다. 이들 시설의 건설에만 6580억원이 소요되었다. 대상을 확장해서 올림픽 경기장 전체 12곳에 대해 살펴보면, 적자폭은 매년 142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진지하게 나서거나 책임지는 이는 없다. 지역 유력 인사들과 정치인들은 올림픽 관련 조직에서 요직을 거친 후, 각각 ‘성공 개최’, ‘미래’, 평화’를 외치며 착실히 다음 경력을 쌓을 자리로 옮겨 갔다. 올림픽 관련 사업을 통해 공적 감시망을 벗어난 막대한 예산으로 이익을 얻은 사업자들은 이번엔 ‘유산 활용’이라는 새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강원도내 각 지자체들은 ‘올림픽 유산 계승’ 사업과 2024년 청소년동계올림픽을 위한 신규 사업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올림픽의 본질, 올림픽 특구 사업
주최측이 올림픽 재해의 실상과 악화된 지역 상황은 외면한 채 신규 사업에 몰두하는 기만은 올림픽 특구 사업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특구 사업들은 유치가 확정된 이후 올림픽 개최를 이유로 특별법에 의거해 각종 특혜를 받으며 추진되어 왔지만, 실상 올림픽과 아무련 관련이 없는 개발사업들이다. 대형 건설사 및 투자 기업, 국제 금융 자본이 기존의 규제를 면제받은 채 호텔과 리조트를 짓고 있다. 올림픽이 다 끝난 2019년부터 특구 사업 2단계는 확대 시행되기 시작했고, 각 지구의 대상 면적도 증가해 총 28.83㎢로 늘어났다.
강릉 금진항 일대의 특구 사업은 호텔이 완공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리조트, 골프장, 쇼핑몰 등이 포함된 대규모 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사업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갔다. 강릉시는 기존의 사업자가 아닌 새로운 사업자와 투자협약을 체결했지만, 기존의 사업자는 자신의 권리가 유효함을 주장했다. 시의회에서는 이중협약 의혹을 제기하며 사업의 진행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지금껏 확실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정동진 지역 50만㎡ 부지에 ‘관광휴양타운’을 조성한다는 특구 사업은 2013년 토지를 매입하고 추진하기 시작한 뒤 8년 동안 진입로 일부 공사만 진행한 채 방치되어 있다. 지방 정부가 계속해서 사업자 측에 세부 사업 계획과 구체적 일정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나온 것은 없다. 하지만 지방 정부는 동시에 투자 유치 부진으로 사업 추진의 어려움이 있다는 변명을 대신 늘어놓으며, 부동산 투자이민제를 2024년까지 연장하고 토지거래계약 허가를 2023년까지 연장하는 등 타당성 없는 사업에 행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부 특구 사업은 올림픽이 끝난지 3년이 넘도록 착공은 커녕 구체적인 계획안도 세워지지 않았으나 특권을 누리며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특구 사업지 중 가장 규모가 큰 ‘녹색비즈니스 해양휴양지구’에는 2015년에 도립공원 지정 구역을 일부 해제하며 경포호수와 경포대 사이에 두 개의 대형 호텔이 들어섰고, 두 개의 리조트 사업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 중 한 사업지는 원래 사업기간인 2016년 7월부터 2017년 7월까지 시행은 커녕 구체적인 사업 계획도 수립되지 않았으나 이례적으로 사업기간이 4차례나 연기되어왔다. 올림픽을 위해 신속히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업자가 대상지의 80%를 매수하면 나머지 20%는 강제수용할 수 있다. 토지가 수용된 주민들은 올림픽이 개최될 때까지도 사업이 추진되지 않았으니 통상적인 다른 사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업이 취소되고 땅을 되돌려 받을 거라고 기대하고 기다렸으나, 특구 사업은 그렇지 않았다. 올림픽 숙박난을 해소해야 한다며 관광숙박시설을 짓는다는 명목으로 허가받은 사업이었지만, 이후에 개별 분양이 가능한 일반숙박시설 건설 사업으로 변경할 때에는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또 다른 사업지 역시 시행이 보류된 채로 부지가 방치되어 있다가 올해 5월에 사업자가 변경되었다. 기존의 사업자는 특별법으로 사업허가를 받아 부지를 보유하고 있다가 새로운 사업자에게 사업 일체를 매각하고 지가 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차익만 고스란히 챙기고 떠나갔다. 새로운 사업자는 알펜시아를 건설한 태영건설 등이 투자한 특수법인이며, 2024년까지 호텔 등의 숙박시설을 지을 거라고 한다.
특구로 지정되며 들어선 대형 호텔 중 하나는 송정해변 옆 소나무 숲에 인접해 있다. 숲의 일부는 환경영향평가 협의 당시 원형보전지로 존치하기로 결정되었다. 하지만 호텔은 아무런 협의 없이 작년 11월 무렵 호텔과 해변 사이에 위치한 나무 30그루 이상을 무단 벌목하였다. 호텔 측은 소나무가 죽어서 베어냈다며, 원형보전지인지 몰랐고 손님들이 보기 싫다고 했다는 이유도 들었다. 이와 같은 사태는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공용공간이었던 해변과 숲을 개발기업이 사적으로 점유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숲과 해변이 이어지는 곳에서 베어져나간 나무의 그루터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호텔을 위한 공간이 되어 있었다. 호텔 1층의 음식점을 이용하는 손님들의 좌석과 테이블, 호텔 부대 시설들이 넓게 자리잡아 호텔의 앞마당이라 해도 무방해 보였다.
강릉 해안길을 따라 자리잡고 있는 소나무숲은 동해안에서 보기 힘든 큰 규모의 해송림으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숲으로 꼽힌다. 나무의 수령은 90년에서 130년에 이른다. 주민들은 경관을 독점하고 숲을 파괴하는 개발사업에 꾸준히 항의해왔다. 사업자 측은 개발사업으로 공공녹지와 산책로 등을 확보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숲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많은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숲과 해변을 편하고 자유롭게 이용해왔으며, 오히려 개발사업으로 인해 숲이 훼손되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든다고 맞선다. 하지만 올림픽 특별법으로 개발사업의 근거가 마련되고 각종 개발사업 사례가 이미 누적된 현 상황에서 숲을 지켜내는 일은 쉽지 않다. 숙박시설 건설을 추진하며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는 또 다른 사업자는 특구 사업으로 해안가 바로 옆에 대규모 숲 훼손을 동반한 사업에도 허가를 내주었으니 형평성에 맞게 자신의 사업도 건축허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강원도 행정심판위원회에 건축불허가처분 취소 청구를 제기한 바 있다. 행심위는 사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로지 ‘올림픽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지역 주민들의 권리,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 환경 및 공공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하는 모든 절차는 생략되거나 축소되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우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근거나 진행 과정은 무엇 하나 공개되지 않는다. 공공 자원을 동원하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올림픽 특구 사업은 그 자체로 올림픽의 본질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리왕산
2020년 여름, 가리왕산 하봉 정상 부근 |
2020년 여름, 가리왕산 하봉 정상 부근 |
'유산'과 '특구'의 이름으로 게속되고 있는 올림픽 재해의 실태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정선군에 위치한 가리왕산이다. 기습적인 불법 벌목을 시작으로 10만그루 이상의 나무가 잘려나간 가리왕산은 올림픽 주최측의 당초 약속대로라면 진작 모든 시설을 철거하고 보호구역 산림의 복원 작업을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지방정부는 '올림픽 유산 활용'을 이유로 환경영향평가 협의조건을 어느 것 하나 이행하지 않았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는 사이에 스키 슬로프에 인접한 숲의 노거수가 빠른 속도로 죽어가는 등 주변 숲의 건강성도 악화되고 있다. 스키장이 들어선 곳은 가리왕산 전체의 주요 수분 공급처 중 하나인 숙암계곡이 있던 곳이다. 2012년부터 식생조사를 진행하고,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지속하고 있는 환경단체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풍부한 습기를 공급해주던 계곡이 있던 자리에 슬로프가 조성되어 황무지가 된 경사면을 따라 건조한 열풍이 발생하는 것과 주변 산림의 건강성 악화가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대규모 산림 훼손으로 지하 수위가 내려간 것, 스키장을 지으며 수백년 동안 형성된 산림 토양을 완전히 제거한 것, 노출된 표토층에서 양분과 수분이 계속 손실된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또한 스키장에 사용된 인공눈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평창올림픽이 개최된 2018년 여름 장마철의 집중호우로 가리왕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후, 2019년에 강원도는 국비지원으로 수해방지사업을 실시했다. 현장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는 해당 사업으로 설치한 사방시설이 정상적인 형태도 아니고 항구적으로 유지되기도 어렵다며, 토사가 쓸려내려간 경사면을 기존의 슬로프 형태대로 복토해 메워버려서 재해 예방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뒤로 지금까지 경사면의 표토는 더욱 척박해지며 자갈의 비중이 점차 높아졌다. 최근 몇 년 동안 가리왕산 지역에는 일 강수량 30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리지 않았기에 산사태의 위험이 간과되고 있다. 스키장 토목공사가 진행될 때부터 경사면 보호 시설과 배수구조물이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산사태의 위험도가 높다고 지적되어왔었다. 스키장을 조성하기 전에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울창한 숲이 물길을 안정화하고 집중호우에도 산사태를 막아주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숙암계곡이 있던 산비탈 아래에는 가리왕산과 함께 살아가던 숙암리 마을이 있었다. 주민들이 강제이주된 뒤, 마을 자리에 특구 사업으로 조성된 호텔에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꽤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있었다. '웰니스'를 내세워 홍보하고 있는 호텔의 수영장에서는 손님들의 웃음 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다. 호텔 수영장은 숙암리 주민들 중 일부가 이주해 자리잡은 이주단지와 마주해 있다.
가리왕산에 알파인 스키장을 건설하기 위해 소요된 돈은 1926억원이다. 2013년에 산림청이 올림픽 개최를 위해 가리왕산의 국가보호산림구역 지정을 일부 해제하며 추정한 복원 비용은 약 1000억원이었다. 얼마전 확정된 내년도 국비 예산 중 가리왕산 산림복원비로 책정된 것은 14억원에 불과하다. 올해 6월에 '합리적 복원을 위한 협의회'는 3년 동안 곤돌라를 운행할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었다. 정부는 구체적인 복원계획을 수립하고 준비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조치라고 했다. 하지만 11월에 환경부는 산 정상부에 342㎡의 상부 정류장과 2657㎡ 상부데크를 포함하는 대규모 관광시설을 설치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복원계획을 마련하겠다며 구성한 생태복원 추진단과 어떠한 논의도 없이 내려진 결정이었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