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재해의 악순환을 멈춰라 8. 맞잡은 손
올림픽 유치 세력들에게 도대체 누구를 위해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것이냐고 물으면 바로 개최지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올림픽 재해로 인해 개최지 주민들의 삶이 위협받을 때, 왜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꼭 올림픽을 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면 그들은 선수들을 가리킨다. 올림픽 사업의 일부분에 불과한 국가대항 체육대회는 올림픽을 지속할 가장 큰 명분이며, 좋은 사업 아이템이다. 강화되는 국가주의가 직접적인 폭력으로 표출될 때, 올림픽 사업자들은 이익은 취하고 책임은 버린다. 권위주의적인 정권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올림픽이 개최될 때 이러한 모순은 극대화된다. 지난 올림픽에서 숱하게 보아온 기만 행위는 이번 올림픽을 개최하면서도, 곧 개막될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도 이미 벌어지고 있다. 메달을 획득하여 자국의 위상을 높인 선수들은 영웅이 된다. 그렇지 않은 선수들이 마주쳐야 하는 현실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협력자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IOC에게 중요한 것은 미디어로 전해지는 스펙터클이지 사람들이 아니다. 올림픽을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고 막대한 이익을 얻는 협회 및 연맹들의 문제에 대해 프로 선수 출신의 연구자 및 활동가, 그리고 많은 스포츠 전문가들이 꾸준히 지적해왔다. 또한 지금과 같은 올림픽 개최 방식은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도 계속 이야기해왔다. 권한을 가진 협회들은 많은 선수들이 겪는 신체적, 정신적, 성적 학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나서기는 커녕 묵인하고 방조하고 조장한다. 평시에는 최저 생활임금 수준의 급료도 보장되지 않는다. 선수를 전면에 내세우는 연맹과 협회들이 실제 선수들을 위해 지출하는 금액은 전체 재정에서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나마 운영 상황을 공개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지만, IOC를 비롯해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제 협회들의 주요 정보는 공개되지 않는다. 올림픽 전 기간에 걸쳐 미국 정부가 자국 참가 선수들에게 지불하는 기본 급료보다 IOC 위원이 단 하루 올림픽에 참석하는 대가로 받는 돈이 더 많다.
IOC는 올림픽의 유일한 소유권자로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권리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행사한다. 결정권을 행사하는 위원들이 어떤 과정으로 선정되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우리 사회의 공적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민주적 선거제도로 선출된다. 정부와 선출직 공무원들은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우리의 의사를 대변할 책무를 진다.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민주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거나, 다시 새로운 공무원을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IOC 귀족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되지 않는데도 개최지 사회의 공적영역에 제도적, 법적 한계를 뛰어넘는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 이는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실제 IOC 위원의 10%는 왕족이거나 귀족 가문의 일원이다. 나머지 90%는 세계적 부호이거나 저명한 권력자들이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올림픽을 통해 직접 이윤을 얻는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다. 더불어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탈세, 횡령, 임금체불, 불법 선거활동, 유치 과정에서의 뇌물 수수 등의 각종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다. 하지만 범죄 이력이 IOC 위원으로서의 활동에 큰 지장이 되지는 않는다. 그들은 개최지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며 개최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어떠한 자격도 없지만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한다. 매번 올림픽 개최지가 어떻게 선정되는지, 그 기준이나 과정도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개최지 정부와 IOC가 맺는 계약서는 불공정한 항목들로 가득하다. 유치 추진 과정에서부터 둘 사이의 관계는 동등하지 않다. 올림픽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수익에 대한 처분 권한은 IOC에게 있다. 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개최지에 남겨진다. 무수한 권리를 누리는 올림픽 사업자들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아무것도 없다. 개최지 주민들에게 홍보한 당초의 예산보다 아무리 많은 돈이 소요된다고 한들 IOC에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들의 수익은 모든 공적 감시망을 벗어난다. IOC의 본사는 스위스 로잔에 위치해있으며, 어떤 정부로부터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머문 5성급 오쿠라 호텔 객실의 숙박비는 하룻밤에 2600만원 가량이다. 전액 도쿄 조직위가 부담했다. 그가 호텔을 드나들 때마다 경찰 등 경비인력 50여명이 대기한다. 일본 언론들은 “도쿄올림픽이 IOC 귀족들의 놀이터로 변했다”고 비판했지만, 이런 일이 도쿄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IOC 위원들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원수급 의전 대상이 되며, 4성급 이상 호텔과 일등석 항공권을 제공받는다. 2014년에 오슬로가 2022년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거론될 때, 노르웨이에서는 개최비용에 대한 우려로 유치 반대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개최 추진에 대한 정부 재정지원안을 두고 의회 표결이 예정되어 있던 날, IOC가 각종 특권을 요구한 사실을 기록한 문건이 공개되었다. 문건에 언급된 요구사항은 국빈급의 환영회, 전속 자동차와 전용도로의 할당, 공식스폰서를 위한 광고 공간 통제권 등 여느 개최지에서 IOC가 누려온 특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문건의 공개 이후 반대 여론은 더욱 거세어졌고, 오슬로는 올림픽 유치 의사를 철회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두비(Christophe Dubi) IOC 이사는 “뛰어난 노르웨이 선수들을 비롯한 노르웨이의 모든 사람들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공적영역을 IOC 귀족들의 놀이터나 사적 이윤 추구의 장으로 내어주길 거부한 도시는 오슬로 뿐만 아니다.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의사를 밝혔던 6개 도시 중 4개 도시가 유치 신청을 철회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은 막대한 건설 비용을 들여 만드는 경기장들이 개최 이후 쓸모가 없고, 개최 비용도 부담된다는 이유로 유치 의사를 철회했다. 당시 스톡홀름이 추산한 개최 예산은 평창올림픽 예산의 12% 규모에 불과했다. 폴란드의 크라코프와 독일의 여러 도시 역시 주민투표를 통해 유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24년 하계올림픽 개최지 선정 과정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 올림픽위원회는 보스턴에 2024년 올림픽 유치를 추진했다. 하지만 보스턴 시민들은 올림픽이 “이익을 얻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도시를 판매하는 행위”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결국 보스턴 시장은 “올림픽이 가져다주는 어떠한 혜택도 우리 시의 재정적 미래를 넘겨줄 만큼의 가치가 없다”며 유치 의사를 철회했다. 독일 올림픽위원회는 2024년 올림픽의 함부르크 유치를 추진했다. 이들은 주류언론을 동원해 대대적인 홍보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오히려 쏟아지는 광고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올림픽 개최의 긍정적인 면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실제 개최 비용, 올림픽이 야기하는 주거불안정과 임대료 상승과 감시의 강화, 소위 ‘올림픽 유산’이라고 불리는 것의 지속 불가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고, 주민투표 결과에 따라 유치 신청을 하지 않게 되었다. 2026년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거론되던 캐나다의 캘거리 역시 주민투표 끝에 개최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이미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통해 광범위한 환경파괴, 선주민 토지 약탈, 빈민에 대한 폭력적인 강제퇴거, 재정적 부담으로 인한 사회안전망의 붕괴를 목도한 캘거리 사람들은 우리 도시에 필요한 것은 올림픽이 아니라 더 나은 공중보건과 공교육, 주거안정이라고 말하며 단호히 거부 의사를 표했다.
올림픽을 원하는 도시가 점점 줄어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올림픽 사업을 지속하고 싶은 IOC는 근본적인 문제들과는 하등 상관도 없고 실현할 생각도 없는 각종 개혁안을 내어놓으며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최종적으로 2024년 하계올림픽 입찰에 나선 도시는 단 두 곳 뿐이었다. IOC는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스스로의 규정을 무시하고 파리와 로스앤젤레스를 각각 2024년,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동시에 결정했다. 두 도시의 사람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취약한 커뮤니티부터 가장자리로 몰아내고, 도시를 점유하는 올림픽 사업에 맞서 계속 싸워오고 있다.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이탈리아의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에서도 즉각 반대의 움직임이 일었다. 이들은 산악지대의 환경을 광범위하게 훼손하고 공적영역을 착취하여 국제금융자본과 부동산 투기 세력의 이윤을 창출하는 올림픽 사업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 사업으로부터 직접 이익을 얻는 세력의 협력체계는 여전히 강고하다. IOC 뿐만 아니라 권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인들,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력 인사들, 공적 자금에 기생하려는 기업들, 주거 등 공공 필수재를 상품화하려는 자본들은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긴밀하게 교류한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결정 어디에도 실제 올림픽 재해를 겪게 될 사람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다. 빈민과 노동자들이 나서서 유치한 올림픽을 본 적이 있는가. 올림픽 사업이 우리 삶의 기반을 무너뜨리기 전에 정중하게 우리의 의사를 확인한 적이 있는가. 다만 그들은 통보할 뿐이다. 종종 아무런 말도 없이 많은 이의 삶을 가장자리로 밀어낸다. 사람들을 지켜내야 하는 개최지의 법률과 제도는 무력화된다. 올림픽으로 인해 아무리 심각한 위기 상황이 발생해도, 개최지 주민들의 의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윤만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올림픽이 개최될 때 마다 볼 수 있다. 우리는 올림픽의 억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로 인해 쫓겨나는 이들의 곁에 선다. 올림픽의 착취를 용인하지 않고, 파괴되는 서식지에 깃든 생명들과 함께한다. 올림픽의 배제에 순응하지 않고, 빼앗긴 것을 되찾기 위해 나아간다. 서울과 평창, 나가노와 도쿄, 파리와 로스앤젤레스, 베이징,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브리즈번 그 어디에서도 더이상 올림픽 재해가 반복되어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손을 맞잡고 서로를 지킨다. 올림픽 사업자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오직 스스로의 이익 뿐이기에 이에 맞서는 우리의 연대는 강하다. 올림픽의 시대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우리는 어디에서나 계속 싸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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