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재해의 악순환을 멈춰라 6. 예외상태

2016년 3월 2일, 국회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었다. 국정원의 수사권 확대, 대테러센터의 신설 및 막대한 권한 부여 등의 내용을 포함한 이 법은 ‘테러’ 행위에 대한 모호한 규정을 바탕으로 불특정 다수에 대해 광범위한 정보 수집 및 수사가 가능하게 하고, 상시로 군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에 오랫동안 반대에 부딪혀왔다. 국회에서 15년 묵은 법을 서둘러 입법해야 하는 주요 이유로 든 것 중 하나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가 임박했다는 것이었다. 2017년 7월, 처음 열린 새 정부의 국가테러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테러방지법에 의거해 ‘평창동계올림픽 대테러 안전활동 기본계획’을 추진한 것이다. 


테러방지법이 제정되기 한 달 전, 시범실시 단계에 있던 탑승자 사전확인제도가 전면실시되기 시작했다. 이는 한국으로 입국하는 항공권을 구매하는 자에 대해 발권 전에 미리 여권 등 승객정보를 한국 법무부에 의무 전송하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 등의 일부 국가는 입국 항공편 이용객에 대해 체크인 과정에서 정보를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발권에 앞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탑승에 부적당한 승객’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여 자의적인 남용의 가능성이 높으며, 난민신청 의사를 가진 사람을 사전에 차단할 우려가 있다. 마찬가지로 탑승자 사전확인제도 전면 도입의 주요 이유는 올림픽을 앞두고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더불어 개정된 출입국관리법은 장기체류 입국자에 대한 민감한 생체정보 수집을 의무화했다. 



평창올림픽 취재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주요 외신 기자 중 일부는 “평창엔 총이 없다” “지난 올림픽들과는 달리 중무장한 병력을 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의아했다. 올림픽과 관련된 장소와 주요 교통 거점에는 무장한 신형장갑차와 헬기, 장총을 든 경찰특공대, 폭발물 탐지 훈련을 받은 군견 등이 상시로 돌아다녔다. 평창올림픽에 동원된 보안인력은 하루 평균 5만명, 최대 6만명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의 두 배에 가까웠고, 2014년 소치보다는 2만명 더 많았다. 인력 외에도 첨단 감시카메라, 안면인식 시스템, 군사용 드론과 무인비행기, 전술비행선 등이 도입되었다.



2017년 6월 15일, 일본 국회에서 공모죄로 불리우는 테러등준비죄를 신설하는 조직범죄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전에도 여러차례 개정 시도가 있었으나 반대 여론이 거세고, 법조계와 야당의 비판이 이어져 보류되었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테러방지를 위해 반드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편법적인 우회 절차를 거쳐 결국 통과되었다. 여느 테러방지법안과 마찬가지로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범죄로 규정하기 어려운 행위에 대한 예방적이고 강압적인 조치를 용인하며, 사회적 비판을 억압하는데 악용될 여지가 매우 크다. 지난 4년 동안 이 개정법안에 근거하여 올림픽을 준비한다는 명목 하에 안면인식 감시카메라를 비롯한 첨단 감시 장비 도입과 보안인력에 대한 예산은 계속 증가해왔다. 


2018년 8월, 일본 가와사키시 토도로키 경기장에서는 ‘ISDEF(이스라엘 군수산업 박람회)’가 열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비무장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생후 8개월령의 아이를 포함한 140명 이상이 살해되고, 1만 6천여명이 부상을 입은지 겨우 석 달이 지났을 때였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신무기 개발의 시험지로, 중동 전역을 신무기의 쇼케이스로 삼으며 무기 산업을 통한 막대한 이익을 챙겨왔다. 이스라엘이 생산하는 무기의 75%는 수출되며, 6800여개의 군수산업체는 “실전에서 검증되었다”고 광고하며 무기를 판매한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ISDEF가 열렸던 주요 이유는 ‘평화의 축제’ 올림픽을 위한 철저한 보안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식 홍보물에는 오륜기가 그려져 있었다. 시민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공공체육시설을 군수산업 박람회에 제공하는 것 자체가 시 조례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와사키시는 1982년 ‘핵무기 폐기 평화 도시’를 선언하였으나, 핵무기 보유국인 이스라엘의 군수산업 박람회장이 되었다. 


202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될 예정인 하계올림픽은 특별국가안보행사(NSSE)에 포함된다. NSSE를 통해 국토안보부(DHS)는 지역의 법 집행 기관과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다. 이민세관단속국(ICE), 관세국경보호청(CBP),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등 2002년 부시 행정부가 창설한 국토안보부 산하의 기관들 뿐만 아니라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도 행사가 열리기 이전부터 깊이 관여한다. 2000년에 처음 도입된 NSSE는 2002년 슈퍼볼 개최 때부터 스포츠 행사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이 NSSE에 포함된 것을 계기로 국가안보국(NSA)는 해당 지역 민간인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데이터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했다. 사실상 영장없는 감시나 다름없었다. 많은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은 NSSE 적용을 통해 이미 심각한 경찰 폭력 문제가 더욱 악화될 것이며, 이주민 및 유색인종 커뮤니티와 주거 취약 계층이 위기에 내몰릴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세계적인 격변의 시기였던 1968년, 멕시코에서도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 운동의 물결이 거셌다. 올림픽 개막을 앞둔 몇 달 동안 각지의 시위에 대한 정부의 폭력적 진압은 더욱 가혹해지고 있었다. 올림픽 개막식을 열흘 앞둔 10월 2일, 멕시코시티 틀라텔롤코 광장에는 부당하게 구금된 동지들의 석방과 민주적 개혁을 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부터 모여있었다. 이들은 “올림픽이 아닌 혁명을 원한다”고 외쳤다. 오후 6시 무렵, 첫 발포가 시작되었다. 올림픽 보안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부대 ‘올림픽 대대(Olympia battalion)’가 광장에 진입했고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추정되는 사망자수는 300명에서 500명에 이르고, 1000명 이상이 잡혀갔다. 정부는 어떠한 입장표명도 하지 않았고 열흘 뒤에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올림픽은 시작되었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매년 10월 2일이 되면 추모집회가 열린다. 이들은 여전히 한 목소리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다. 


올림픽은 늘 광범위한 군사화와 억압을 합리화하는 수단이 되었다. 올림픽이 아니라면 통상의 정치적, 사회적 절차를 통해서는 도입하기 어려운 모든 무기와 자금, 예외적인 막대한 권한이 확보된다. 이는  짧은 축제 기간 동안만이 아니라 유치가 확정된 때부터 수 년 동안 개최지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올림픽이 만든 예외상태는 개최지 사회 일상에 남아 소외된 공동체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고, 강화된 통제를 유지시키며, 시민의 자유를 극적으로 제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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