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 도쿄에서도, 파리에서도 (2020.11.30 사사키 나츠코)

* ‘노올림픽파리 (NON aux JO 2024 à Paris)’에 함께하고 있는 사사키 나츠코의 글을 공유합니다. 프랑스어로 작성된 원문은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2021년 여름에 도쿄에서 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11월 16일,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는 “내년에 관중 앞에서 올림픽을 치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전면적인 보건 지침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2020 도쿄 올림픽 공식 후원사’ 중 하나인 일본의 일간지 마이니치 신문은 바흐 위원장이 “우리는 일본을 지지한다”, “우리는 그 결정에 함께한다” 등의 신중한 표현을 사용하여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올림픽 개최를 강행하겠다는 일본 총리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IOC가 책임을 피해갈 길을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올림픽 사업 수익의 상당 부분은 광고에서 나온다. 최상급 후원사인 TOP 파트너의 마케팅 독점권에서 오는 수익은 IOC 전체 수익의 18%에 불과하지만, 방송중계권으로 인한 수익은 73%에 이른다. 최고투자책임자에게 막대한 돈을 지급하는 방송사들은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받는다. 올림픽 방송 황금 시간대에 광고를 하기 위해서 미국 기업은 올림픽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 NBC에 9억 8500만원에서 11억원 가량을 지불한다. 광고로 인한 수익만 해도 IOC 전체 수익의 40% 정도를 차지한다. 참고로 올림픽 개최 기간이 아닐 때 NBC의 황금 시간대 광고는 1억 3200만원 정도다.


이러한 사업 모델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도쿄에서 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후원사들의 놀라운 행태를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광고주는 자신의 광고가 어디에 걸릴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광고비를 지불할 때는 더욱 신중하게 선택하곤 한다. 우리가 알기로, 이와 같이 막대한 자원의 동원이 필요한 스포츠 축제는 기업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좋은 선택이 아니다. 한 마디로 올림픽은 돈들일 가치가 별로 없다. 이는 이전에도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었지만, 세계적인 감염병 대유행이 시작된 이후로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전염병 주식회사’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림픽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장 큰 기회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다. 게임 속에서라면 인류를 박멸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게 현실이라면 즐겁지 않은 일이다. 배양 접시를 후원하는 건 위험한 도박이다. 특히 이 문제의 쇼가 건강한 몸과 신체적 능력에 대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백신은 어떠한가? IOC는 올림픽 조직 예산 분담을 거부하는 동시에 “내년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백신 접종 비용의 전부나 일부”를 보장하라고 제안한다. 이 관대한 제안은 여러가지 몽상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그 중 가장 터무니 없는 건 “올림픽 가족”을 우선하는 것을 모두가 받아들일 거란 가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최국 공식 후원사 중 60%가 2020년 12월 말에 만료되는 계약 연장을 아직 공표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들의 돈 없이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이는 공적 자금에서 충당될 것이다.


이제 문제의 핵심을 이야기해보자. 광고 없이는 기능할 수 없는 쇼를 왜 공적 자금으로 개최해야 하는가? 지금의 올림픽 모델은 납세자들이 30년간 빚을 갚아나가야 했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끔찍한 재정적 실패에서 만들어졌다. 이후 진행된 1984년 개최지 선정 과정에는 시장이 재정적 책임을 회피한 로스앤젤레스만 유치 의사를 밝혔다. 이렇게 1984년 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 피터 워버로스의 통솔 하에 올림픽 무브먼트가 자신의 신조였던 “사업은 사업이고 스포츠는 스포츠다”(제5대 IOC 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의 성명)를 버리고 초기 신자유주의를 따르며 현금 지급기가 되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익을 창출했다. 이후 차례로 서울, 바르셀로나, 아틀란타, 시드니에서 재정적 성공을 꿈꿨지만 여러 이유로 워버로스의 방법론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그리스 전체의 파산에 큰 기여를 했다. 아테네 이후의 모든 올림픽은 여러 면에서 몬트리올의 재연이나 다름없었다. 


이와 같은 국제적 맥락을 고려할 때, 원전 재해가 발생한 직후 개최가 확정된 일본에서 올림픽에 대한 공동의 열망이 나타난 적이 없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열망 없는 상태는 시의적절한 계기에 의해 증오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개막식을 몇 달 앞두고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나타났다.


198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아키라’의 한 장면을 보자. 2019년 네오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올림픽 개막까지의 카운트다운을 표시하는 전광판 옆에 ‘中止 だ 中止(중지다 중지)’라고 적혀있다. (스포일러:작품 속 네오 도쿄 올림픽은 실제로 취소되었다)  감염병 확산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누군가에 의해 이 사이버펑크 걸작과 현실 사이의 유사성이 드러났다. 코로나19가 등장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이 작품이 다시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해시태그 # 中止 だ 中止(중지다 중지)와  #CanceltheOlympics은 소수의 의견이 아니다. 여러 여론조사가 이러한 시대정신을 뒷받침해준다. 일본 사람 네 명 중 한 명만이 2021년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 


감염병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봄부터 테스트 행사 시설 재예약, 이미 판매한 티켓에 대한 배상, 계약된 선수촌 입주예정자에 대한 보상, 조직위 직원 4000여명의 고용 유지 등 올림픽 연기로 인한 비용은 2조 7천억원에서 6조 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었고, 이러한 비용만을 고려해보아도 올림픽 연기는 타당하지 않은 결정이었다. 게다가 바흐 위원장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전면적인 보건 지침의 실시”가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여기에는 선수촌 내에 선수, 코치, 스탭을 포함한 3만명 규모의 보건 센터 확보, 체류하는 선수 당 5회의 문진 등이 포함된다고 한다. 이는 최근 모든 올림픽 주최 측이 이야기해온 ‘간소화’에 반하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위기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모든 국가에게 보건적 측면에서 매우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개최되지 않을 수도 있었던 행사를 위해 집중되는 이와 같은 의료 자원 등의 동원을 일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주최 측이 연기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보험사 등 여러 이해당사자들과 협의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백신의 유무와 상관없이 이 결정이 받아들여질 거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인지적 편견에는 이름이 있다. 바로 콩코드 오류다. 적지 않은 매몰 비용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은 견해를 가지고 완고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게 수 조원의 규모일 때엔 그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나날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의 불가항력적 상황에서 취소가 가능한 일시적 행사가 콩코드 판단 오류를 만들어낼 만큼 거대해져서는 안된다. 규모를 줄일 수 없다면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사실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없었어도 올림픽은 이미 너무 비대해져서 더이상 받아들여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민주적 협의의 원칙을 따른 대부분의 입후보 도시들은 여론에 의해 유치를 철회해야 했”으며 주민들을 협의 과정에서 배제한 도시들만이 올림픽을 환영한다. 코로나19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거나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새롭게 드러낸 것이 아니다. 단지 수십년동안 실존적 위기 속에 있었던 올림픽이 사라지는 과정을 조금 앞당긴 것 뿐이다.


올림픽의 모든 해악이 판도라의 상자에서 뛰쳐나왔기때문에 올림픽은 도쿄에서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2.

2024년 여름에 파리에서 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주최측이 현재 ‘간소화’라는 필수 조건을 달성할 시간도 없고 의지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2020년 9월 30일에 2024 파리 올림픽 조직위가 이사회에서 이야기한 상징적 노력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주최측은 감염병 대유행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된 예산 급증의 문제를 인식하고 1300억원 가량의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수영장과 배구장을 포함한 두 가지 대규모 건설 사업을 일시적으로 보류했다. 그러나 자신의 선거구에 ‘유산’을 남기길 원하는 선출직 공무원들의 압박으로 몇몇의 거대하고 쓸모없는 사업들은 건드리지 않았다. 이 쓸모없는 사업들 중 대표적인 예는 라쿠르뇌브 지방 공원의 일부이자 해당 지역의 유일한 대단위 녹지이며 유럽연합 자연보호 네트워크인 나튜라 2000(Natura 2000)에 속하는 에르드방(Aire des Vents) 공원에 들어설 ‘미디어 클러스터’ 건설 사업이다. 이 부동산 사업 덕분에 여기 사는 내터잭 두꺼비(crapauds calamites)의 생존이 불투명해졌다. 


‘미디어 클러스터’ 사업은 다른 올림픽 연계사업과 비교해도 특출나게 쓸모없어서 IOC 위원들 조차도 “파리 지역 호텔의 수용 능력은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미디어촌 건설이 과연 필요한가”라고 말할 정도다. 그러나 긴급조치 법안인 ‘올림픽 법’의 특혜를 받는 선출직 공무원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의 고귀한 의향을 배반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IOC가 소중히 여기는 단 한 가지가 있긴 하다. 그건 바로 올림픽 무브먼트 자체의 생존이다. 지역의 선출직 공무원들은 주민들이 올림픽을 적당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너무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걸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IOC도 확실하고 구체적인 이익 없이는 그들의 게임을 유치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생드니의 새로운 사회주의자 시장인 매튜 아노탕(Mathieu Hanotin)이 “올림픽은 물리적인 유산 이상의 것이다. 경기를 통해 주민들의 자부심, 이 땅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끔찍히도 순진하고 위선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물리적인 ‘유산’이 없다면 파리는 올림픽을 유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올림픽이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어떤 도시가 수조원을 써가면서 올림픽을 개최할까?


이것이 21세기 올림픽의 기본적인 원리다. 올림픽 게임은 이를 통해 직접 이권을 얻는 자들과 공공기관, 그리고 IOC가 긴밀히 공모해서 만들어낸 결실이며, 이러한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부가 축적되는 일 없이 단지 “이 땅의 자부심”만을 위해서 올림픽을 유치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말하자면 올림픽을 개최하는 단 하나의 동기는 바로 경제적 분수효과를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올림픽이 지금과 같은 악랄한 방식으로 개최되지 않고 무해한 선언이 되기 위해서는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국제연맹들을 올림픽 종목에서 제명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진정한 올림픽의 간소화는 상당수의 특정 스포츠들을 정리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파리 올림픽위원회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뒤에도 축구, 농구, 골프나 테니스처럼 올림픽이 해당 스포츠의 필수 리그가 아닌 종목의 국제연맹들 조차도 고려 대상에 넣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30여개의 종목으로도 충분치 않다는 듯이 브레이크댄스, 클라이밍, 가라데, 스케이트보드 등의 종목을 계속 추가하고 있다. 파리 올림픽에서 추가될 종목 수를 생각해보면 위원회가 간소화를 달성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마피아같은 국제 스포츠 주역들에게 얽메어있는 조직을 개혁하는 게 너무 어렵다면 조직을 해체하는 게 더 쉬운 일일 것이다.


코로나 이후 프랑스에서는 몇몇 우파 경제학자들이 적어도 ‘올림픽의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사회주의자들이나 좌파들은 올림픽을 취소한다는 발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 개최지의 재무 보고서 몇 개만 훑어봐도 올림픽을 반대하는 자본주의자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올림픽 친화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고를 조금 더 파헤쳐봐야 한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런던의 시장을 역임한 노동당원 켄 리빙스톤(Ken Livingstone)이 올림픽 유치 당시에 밝힌 입장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3주간의 스포츠 행사를 위해 올림픽을 유치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이스트엔드 지역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정부로부터 조달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스트엔드’ 지역을 ‘센생드니’로 바꿔보면, 프랑스에서 가장 빈곤한 이 지역을 위한 기회로써의 올림픽을 홍보하는 선출직 좌파들의 논리와 똑같다. 이는 사회당이나 공산당이나 마찬가지다. “센생드니에서 두 명의 6학년 어린이 중 한 명은 수영을 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미디어 캠페인은 2300억원을 들여 짓는 올림픽수영장 건설 사업을 위한 논리로 활용되었다. 


이들 좌파 정치인들과 그 지지자들이 2012년 런던의 공허한 슬로건을 그대로 따오면서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니 정말 유감스럽다. 낙후 지역에 호의를 베푼 결과, 430명이 살던 영국 최대 주거협동조합인 클래이스레인(Clays Lane)은 철거되었고, 소상공인과 학생들이 머물던 공간들이 사라지고 올림픽 공원이 되었다. 올림픽조달청은 런던 올림픽 공원 부지 내에 ‘적정’ 주거 건설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스위트워터와 이스트윅에 건설될 예정이던 1500개 주택 중 40%가 수익형 사업에 자리를 빼앗겼다. 역대 가장 친환경적이라던 런던 올림픽은 주민들이 한 세기에 걸쳐 감자와 당근, 토마토 등을 재배해오던 해크니 지역의 텃밭을 싹 밀어버렸다. 30년에 걸쳐 누군가의 보금자리가 되었던 레아 밸리 간이 주택지도 사라졌다. 이스트엔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은 특별할 게 없다. 모든 개최지에서 볼 수 있었던 일련의 올림픽 젠트리피케이션이 여기서도 일어난 것 뿐이다. 파리 올림픽을 옹호하거나 “센생드니는 다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좌파들도 이 모든 올림픽 GPII (Grands projets inutiles et Imposés, 쓸모없고 과도한 거대 사업)과 맞닥뜨려 곤란을 겪고 있다. 지금의 거대한 경제 위기 속에서 2300억원짜리 수영장 건설 사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공공임대주택에 투입되어야 할 자금이 원주민의 재정착을 고려하지 않는 올림픽 선수촌 건설 사업에 동원되는 것을 어떻게 옹호할 수 있는가? 두꺼비도, 지역 주민도, 심지어 국제 언론인도 원치 않는 ‘미디어 클러스터’는 어떤가? 수많은 사람들을 빈곤의 끝자락으로 몰아가면서 어떻게 그들의 분노를 피해서 이 모든 일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인가? 소피아 엑사르쿠(Sofia Exarchou) 감독이 영화 ‘파크’에서 적나라하게 담아낸 아테네 올림픽 폐허속의 절망적인 청년들이 그리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예외라고 확언할 수 있는가? 


생태적 측면과 기후 문제에 대한 비판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올림픽을 중지한다고 해서 북극 빙하가 녹는 걸 멈출 수는 없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가 보여주는 현실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지난 지질 시대의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하며 역사의 흐름을 바꿀 상징적인 행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멸종저항행동이 2020년 11월 17일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올림픽 반대 시위를 준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회적 측면에서 올림픽을 비판하는 여러 입장은 각각 일치하지 않는 다양한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생태적 측면이나 기후 문제를 고려하는 관점에서 올림픽을 옹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은 생태적 관점과 무관한 동기로 인해 올림픽의 고질적인 그린워싱을 그대로 수용하고, 올림픽의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영향에 대해 오판하여 이에 맞서지 않는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을 반대하지 않고 지지하는 데에는 아주 단순한 정서, 스포츠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 오늘날 우리가 스포츠를 올림픽 무브먼트와 그 창시자인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의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인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와 분명히 구분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1925년에서 1937년까지 준비되었던 노동자 올림픽과 1936년 바르셀로나 인민의 올림픽이 보여주듯이 다른 스포츠를 향한 시도는 있어왔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대안 올림픽에서 기록을 세우기 위해 애쓴 많은 노동자 선수들이 동료들에게 ‘부르주아’ 소리를 듣기도 했다. 이는 우리에게 IOC의 공범이 되지 않고도 스포츠를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걸 일깨워준다. 


이러한 역사가 드리워져 있기에 1924년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의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파리 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올림픽 무브먼트의 탄생과 유지에 큰 책임을 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한 세기 전에 최악의 보수 정당이 어떻게 올림픽 무브먼트를 이데올로기적 수단으로 활용했는지를 기억할 것이다.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디지털 서비스에서 쿠베르탱의 저작물을 볼 수 있다. 끔찍하게 반동적인 그의 생각은 동포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누구라도 이를 알게 된다면 인종차별주의자에 여성혐오자였던 귀족 남작이 가진 고대 그리스에 대한 환상에서 기인한 행사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성공을 누렸는지, 어떻게 그가 나치 정권과의 공모라는 다분히 의도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는지, 어째서 요제프 괴벨스(Joseph Goebbels)가 발명한 올림픽 성화 봉송 의례는 폐지되지 않았는지, 모두가 궁금해 할 것이다. 


사실 쿠베르탱의 계승자 중 한 명인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 제5대 IOC 위원장은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속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2020년 6월,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아시아 미술관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성공’에 대한 그의 공적과 열렬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의 흉상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뉴욕타임즈가 말했듯이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면 다음 단계로 프랑스인들이 쿠베르탱의 유산을 떠날 방법은 무엇인가?


3.

도쿄와 파리에서 개최가 취소된다면 이제 어디에서도 올림픽은 개최되지 않을 것이다. 넘어간 페이지는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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