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멈춰라 Stop Playing Games 온라인 토론회 5 : the Myth of the Recovery Games (후쿠시마)


올림픽 반대 운동의 목소리를 연결하는 온라인 토론회의 다섯 번째 순서는 후쿠시마 사람들과 함께 했습니다. 올림픽을 이용해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일본 정부와 올림픽 사업의 이익에 몰두하려는 IOC의 기만, 그리고 2011년 재해로 인한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 후쿠시마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노올림픽 로스앤젤레스(NOlympics LA)에서 활동하고 있는 에릭 쉐브린(Eric Shevrin)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7월 26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토론회는 2시간 15분 가량 이어졌으며 58명 가량(최대 참가인원 59명)이 함께했습니다. 

사회자 : 노올림픽 로스앤젤레스는 도쿄 올림픽 개막 예정일을 만 1년 앞둔 작년 7월에 올림픽 반대 국제공동 행동에 참가하기 위해 일본에 갔고, 올림픽 경기가 개최될 후쿠시마도 방문했다. 성화 봉송이 시작될 J-빌리지는 2011년에 멜트다운이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불과 20km 남짓 떨어져 있는 곳으로 사고 이후 6년 동안 후속작업 기반시설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멀쩡히 축구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시설이다. 후쿠시마에서 활동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쿠로다 세츠코 黒田節子 (원전에 맞서는 후쿠시마의 여성들 原発いらない福島の女たち) : 처음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원자력안전기술센터의 SPEEDI(방사능확산정보시스템)은 후쿠시마 지역 주민에게는 아무것도 알리지 않은 채 재일 미군에게 가장 먼저 사고 사실을 알렸고, 그 다음에 후쿠시마 현 당국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후쿠시마 정부는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관련 정보를 공공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제재를 받았다. 후쿠시마 여기저기에서 “싱글벙글 웃으면 방사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다닌 야마시타 슌이치(山下俊一)는 나가사키 대학의 교수로 있었으나 사고 이후 후쿠시마로 와서 방사선건강위험관리 고문 역할을 수행하며 후쿠시마 의대의 부학장으로 취임했다. 사고 이후 우리는 신체적 증상을 경험했으며, 이는 일찍이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피난하여 소위 ‘자발적 피난민’이라 불리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주지에서의 생활은 무척 힘들지만 그들은 피난생활을 계속하는 것이 낫다며, 길거리로 내몰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당국은 이 요구를 무시했고, 수차례의 면담 요청은 모두 거절되었다. 오히려 정부는 왜 스스로 도망갔으면서 불평을 늘어놓느냐고 되묻는다. 피난민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은 주택임대료 일부에 대한 보조 뿐이다. 피난민에게 무상주택을 지원하기 위해 80억엔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정부는 지원 의사가 없다. 이건 재정적인 측면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 100여대를 구입하기 위해 1조엔 이상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정부는 원전 사고와 관련된 상황은 이미 모두 끝났으며 피난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싶은 거다.

사고가 발생한지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주요 논의 중 하나는 저선량 피폭의 문제다. 우리가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기구인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조차도 연간 피폭 허용치를 1밀리시버트(1mSv)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외부 피폭 뿐만 아니라 내부 피폭에 의한 것도 합친 수치다.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에서 각각 시행되고 있는 일명 체르노빌법은 연간 피폭량이 5밀리시버트(5mSv) 이상인 지역에는 강제 피난을 지시하며, 1~5밀리시버트(1~5mSv)인 지역에는 ‘피난의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현 상황을 엄정하게 받아들이고 최소한 국제적 기준에는 준하는 피난 권리 지역을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후쿠시마 지역의 연간 피폭 허용치는 20밀리시버트(20mSv)로 정해졌다. 말도 안되게 높은 허용치다.

후쿠시마를 방문했던 과학자 크리스 버스비(Chris Busby)는 “당신들은 보이지 않는 뱀에 계속 물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었다. 후쿠시마에 산다는 것은 10년 동안 계속 뱀에 물리고 있는 것이다. 사고 직후 우리는 시내 집회에 대해 의논을 했다. 거리에서 피폭되는 문제에 대해서만 의논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후쿠시마 시내를 걷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 지역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각각의 참가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참가 여부를 결정하자고 논의를 마무리했다. 당시 상황은 지금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100% 맞는 정답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우린 이 지역에서 계속 활동을 하는 것 보다 빨리 여길 벗어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르고 다양한 이유로 피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중요한 것은 원전 사고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피난 가능 여부 자체가 개개인의 재정적 상황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명확한 점은 원전을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림픽을 유치할 때부터 ‘원전 사고로부터 부흥하는 올림픽’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했고, 감염병 사태 이후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하여 ‘판데믹 상황을 극복해내는 올림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부흥과 극복이라는 논리를 통해 원전 사고와 감염병 확산도 모두 통제(언더콘트롤)되고 있다고 무책임하게 말하며 기만을 일삼는 것이다. 

올림픽 시설 건설에 3조엔이 넘는 돈이 소요되고 있다. 이는 올림픽 역사에 비추어보아도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사례다. 이 돈은 피난민들에게 필요한 지원을 모두 하고도 남을 만큼의 막대한 규모다. 후쿠시마 지역의 지자체장들은 대체로 올림픽을 환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많은 ‘부흥’ 캠페인 행사를 진행했고, 어린 청소년들을 동원하는 행사도 했었다.

‘꿈의 제전’은 뻔뻔스러운(‘환대한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도쿄 올림픽 슬로건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다르게 해석한 뜻) 꿍꿍이속 뿐인 이권 올림픽이자 토건 올림픽이며 사기 올림픽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을 통해 잘 알려진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 IOC 위원장은 신나치파로도 불린다. 당시 시상식에서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치켜올리며 흑인 차별에 항의 의사를 표명한 두 아프리카계 미국인 선수들은 위원회로부터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현대 올림픽을 만든 쿠베르탱 남작도 있다. 그는 우생학적 사고를 가진 식민주의자이자 여성혐오자이며 인종차별주의자다. “스포츠는 지적이고 효과적인 식민지화 수단이다. .. 원주민도 이와 같은 것을 몸에 익히면 다루기 쉬워질 거라고 기대한다”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이처럼 올림픽은 문제 덩어리이며 후쿠시마를 둘러싼 상황에서 이러한 점은 더욱 잘 드러난다. 후쿠시마의 복구는 올림픽을 통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코로나도 무섭지만 방사능이 더 무섭다. 올림픽은 당장 멈춰야 한다.

작년 3월 11일에 ‘원전에 맞서는 후쿠시마의 여성들’과 ‘오코토와링크(おことわりんく, 올림픽 재해를 거절하는 모임)’, ‘한고린노카이(反五輪の会, 도쿄올림픽반대모임)’는 후쿠시마 역 앞에서 함께 집회를 개최했다. 올림픽 야구, 소프트볼 경기의 후쿠시마 개최를 축하하는 현수막에는 꿈과 희망에 대한 메시지가 적혀있었고, 우리는 그 바로 아래에서 올림픽 반대 현수막을 들고 섰다. 올해는 J-빌리지 앞에서 원전에 맞서는 동료들과 함께 모였다. ‘후쿠시마는 올림픽을 할 때가 아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후쿠시마현 고리야마시 공원에서 집회와 행진도 했다. 올림픽에 저항하고 원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적은 피켓도 준비했다.

후쿠시마 정부에서 공식 발표한 연도별 전국 각 지역별 심근경색 사망률의 변화 그래프를 보면, 원전사고 이후 후쿠시마 지역의 사망률이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후쿠시마 다음으로 높은 사망률 증가를 기록한 지역은 바로 이웃한 지역인 야마가타와 이바라키다. 

제1원전의 오염수 탱크 보관 용량은 한게에 다다르고 있다. 정부는 해양 방류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우리는 이러한 제안을 용납할 수 없다. 후쿠시마 현내 20여개 지역에서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오염수 처리 방안은 올 가을 쯤 최종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누구나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면 안된다는 걸 안다. 우리는 계속 강경하게 반대해 나갈 것이다.

사회자 : 채팅으로 들어온 첫번째 질문을 전달하겠다. 원전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고, 쿠로다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지역 정치인들과 언론의 반응은 어떠한가?

쿠로다 세츠코 : 주류 언론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원전 사고와 관련된 어떤 언급도 하기를 원하지 않는 듯하다. 우리는 상업 매체들이 현재의 원전 위기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발표할 아이하라 히로코처럼, 진실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수의 독립언론들이 있다. 

아이하라 히로코 藍原寛子(후쿠시마 지역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 메가 스포츠 이벤트인 도쿄 올림픽에 가려진 원전 사고와 방사성 오염에 대해 발표하겠다. 나는 후쿠시마에서 태어났고 지역 신문에서 20년 간 일했으며, 2011년 사고에 대해서 보도했었다. 지금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후쿠시마현 하마도리 지역으로 취재를 갔다. 하마도리 지역은 2011년 원전 사고로 멜트다운이 발생한 뒤 심각하게 오염된 지역이다. 7월 23일에서 24일은 예정대로라면 개막식이 열렸을 날이다. 원전 사고 뿐만 아니라 최근 감염병 확산까지 심각한 위기상황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부흥’과 ‘극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후쿠시마 지역의 피해자들은 본인들이 겪은, 또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후쿠시마 밖에 있는 여러 사람들과 연결되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우선 후쿠시마 지도와 3일 동안의 성화 봉송 경로를 보여드리겠다.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예정되었던 성화 봉송은 연기되었지만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올림픽 성화 봉송은 1936년에 나치에 의해 처음 시작된 상징적인 의례다. 일본 전역을 도는 성화 봉송이 후쿠시마에서, 그것도 불과 수년 전까지 원전 사고 후속 작업 장소로 사용되었던 J-빌리지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이 행사의 프로파간다적 측면을 잘 드러낸다. 통상 올림픽 성화는 개최지로 운반되기 전에 그리스에서 수일에 걸친 봉송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리스 올림픽위원회가 봉송 행사를 취소했다. 3월 20일에 성화를 싣고 온 비행기가 도쿄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인근 자위대 기지로 옮겨진 후, 21일에는 환영 행사도 예정대로 열렸다. 행사에는 5만명 이상이 몰려들었고, 성화 도착 소식은 큰 뉴스가 되었다. 감염병 확산 우려로 관련 논의가 한창이던 때였다. 아베 신조 총리는 24일에서야 IOC 위원장 토마스 바흐와 함께 도쿄 올림픽 연기를 공식 결정했다. 이에 26일로 예정되었던 성화 봉송 출발도 연기되었다. 

이 기사에서는 3일 동안 후쿠시마 지역 성화 봉송을 맡을 58명의 주자를 소개하고 있다. 형광펜으로 표시한 사람들이 24명의 10대 청소년이다. 앞서 이야기한 하마도리 지역 봉송 주자 9명 중엔 6명이 10대다. 젊은 사람들이 나이든 사람들에 비해 방사성 오염에 의한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다른 기사에서는 사진과 함께 보다 상세한 인물 소개를 전하고 있으며, 주자 중 한 명을 인터뷰한 기사도 실렸는데 ‘부흥의 상징적 성지가 될 후쿠시마’라는 제목이 붙혀져 있다. 이것이 바로 후쿠시마 지역 언론들이 올림픽을 대하는 입장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오염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해결되거나 깨끗하게 정화된 것이 없으며, 2011년 이후 이 지역의 어떤 시설도 안전하지 않다. 감염병의 급속한 확산으로 일본 정부는 4월에 긴급사태를 선언했고 이는 5월 25일에 해제되었다. 그러나 후쿠시마와 인근 지역은 2011년 3월 11일 이후 지금까지 계속 긴급사태선언이 발효된 상태다. 이러한 상태로 올림픽이 개최되고, 후쿠시마 지역 내에서 주요 행사와 경기가 열린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다. 계속되고 있는 원전 위기 상황에서 곧 한계 수위에 다다르는 오염수 처리에 대해 정부는 다섯 가지 방안을 검토하였고 그 중 두 가지 유력안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오염수를 태평양 해양에 방출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수증기 형태로 공기 중에 방출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특히 수증기 방출은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때에도 사용된 방법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이제 성화 봉송 예정 구간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드리려 한다. 주자가 매우 짧은 구간을 달리면 차가 성화를 전달받아서 다음 주자가 있는 곳으로 운송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전 구간을 주자가 달리지 않는 이유는 방사성 오염이 심각한 지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재해로 황폐화되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지역,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후쿠시마 내 모든 성화 봉송 구간은 지진과 원전 사고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이며, 대부분이 수년 동안 귀환 곤란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지금 보여드리는 구간은 원전 사고가 일어난 곳에 인접한 바닷가 도로를 포함한 곳이다. 나미에 마치를 지나 600m 정도 이어진다. 후쿠시마 로봇 테스트 필드에서 출발하여 이 시설을 빙 돌아 후쿠시마 수소 에너지 연구 필드에 도착한다. 수소 에너지 사업은 정부에서 주력하고 있는 국책 사업으로, 후쿠시마가 이 사업 홍보의 장이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로봇 테스트 필드는 최근에 신설된 시설로 상업적, 군사적 목적의 드론 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두고 있다.

다음에 보여드리는 구간은 J-빌리지에서 출발하는 700m 정도의 봉송 경로다. 평소 같으면 사람을 보기 힘든 곳이지만 영상을 촬영한 날에는 축구 경기가 개최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경기장에 와 있었다. J-빌리지가 성화 봉송 출발지로 결정되고 일본 철도는 오직 올림픽 만을 위해 J-빌리지 역이라는 새로운 기차역을 만들었다. 

올해 초부터 새로운 일일 아침 드라마가 전국으로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 드라마는 코세키 유지((古関裕而)라는 작곡가의 생애를 담고 있다. 후쿠시마 출신인 코세키 유지는 1964년 올림픽 개막식에서 사용된 음악을 만들었고, 드라마의 제작 자체가 올림픽 홍보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는 그의 숨겨진 면모가 있다. 코세키 유지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황군의 전과가 빛난다(皇軍の戰果輝く)’, ‘모두가 받들어 모시다(みんな揃って翼賛だ)’ 등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찬양하는 수많은 군가를 작곡했다. 이러한 맥락을 지우고 만들어낸 작곡가의 성공담을 통해 도쿄 올림픽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라톤 선수 츠부라이 코키치(円谷幸吉)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마라톤 선수였던 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후쿠시마 출신으로 자위대에 복무했던 츠부라이 코키치는 다음 올림픽의 기대주였다. 그러나 그는 멕시코 올림픽 개최를 앞둔 1968년 초에 “나는 지쳤고 더 이상 계속하고 싶지 않다.”라는 유서를 어머니 앞으로 남긴 후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올림픽이 많은 커뮤니티에도 억압을 가하지만 개개인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에게 가해졌던 국가 단위의 압박과 그가 겪은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친다.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사회자 : 두 발표자 모두에게 드리는 질문을 전달하겠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오쿠마 시의원 코와다 마스미(木幡ますみ)는 자신이 해당 시의회에서 유일한 여성이라고 했었고, 원전 반대 활동을 하는 많은 주요 인물들이 여성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점이 원전에 맞서는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가?

아이하라 히로코 : 일본 사회, 특히 후쿠시마가 있는 동북지역은 더욱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원전 사업의 핵심부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성들이다. 원전 문제에 관련해서 고용주나 관리자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남성들이다. 내가 보기에도 원전에 문제 제기를 하는 측에는 많은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쿠로다 세츠코 : 코와다 마스미는 원전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내가 사는 코리야마시에서도 적극적으로 원전 반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헤비이시 이쿠코(へびいし郁子)라는 코리야마 시의원도 원전에 비판적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오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 문제에 있어서는 그만큼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사회자 : 일본의 주류 언론에서 후쿠시마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이렇게나 드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이하라 히로코 :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의 주류 언론에서도 후쿠시마 문제와 올림픽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싣거나 주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도 있었다. 사고 직후인 2011년엔 많은 비판적인 목소리가 있었으나 점차 줄어들었다. 해당 기자들의 직위가 점차 올라가며 목소리도 점점 줄어들었다. 지금 후쿠시마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자들은 극소수이며 대체로 독립언론에 종사하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저널리스트들이다. 주류 언론은 대체로 정권에 협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참가자 1 : 원전 사고 수습과 관련된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올림픽에 대한 그들의 입장은 어떠한가?

아이하라 히로코 : 그 부분에 대해 나도 취재를 한 적이 있다. 일본은 이주민이나 난민에 대한 출입국 행정과 정책이 엄격하고 때로는 가혹한 지경이다. 이주민들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는 법적 지위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고,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람들이 겪고 있는 재해 상황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올림픽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후쿠시마 지역에서 집회 등의 행동을 하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한다.

쿠로다 세츠코 : 후쿠시마 지역 안에서 올림픽 반대의 움직임을 가시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대체로 불안정한 체류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특히 도쿄 외의 지역에서 이주민이 일본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확실한 법적 지위를 가진 일본 내국인 조차도 올림픽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본 사회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이주민들의 탓이 아니다. 이주민과 관련된 일본의 행정과 법률은 끔찍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이주민은 한시적인 유학생, 또는 단기 체류 노동자의 신분만을 제한적으로 부여받고, 상당수의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린다. 

사회자 :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 한다. 올림픽은 연기되었지만 여전히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올림픽을 완전히 취소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리고 후쿠시마 밖에서 여러분과 함께 연대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쿠로다 세츠코 : 나는 도쿄 올림픽이 취소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기이지만 후쿠시마가 올림픽을 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계속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 지금은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본다. 후쿠시마의 문제는 종종 이 지역만의 문제로 여겨진다. 우리는 이것이 후쿠시마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제적인 연대로 원전으로 인한 위기에 대한 논의를 중요 쟁점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아이하라 히로코 : 감염병 확산이 이미 심각한 상태고 해결되지 않은 원전 재해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올림픽은 중지할 수 밖에 없다. 후쿠시마의 문제는 일본만이 아닌 아시아 지역의 문제이기도 하다. 여러 국가에서도 도쿄 올림픽에 대표 선수를 보내도 괜찮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정부는 올림픽을 비용과 투자의 측면에서 보고 싶어 하지만 이는 잘못된 관점이다. 돈으로는 생명을 구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올림픽이 개최지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준다고 가정해보더라도, 해당 사회가 올림픽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위기는 하나도 해소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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