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 이후 2년, 남겨진 올림픽 유산을 찾아서

* english version published on 'Olympics Watch' : Two Years Later, Looking for the 2018 Olympics Legacy

 2020년 1월 10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강원도는 2024 동계청소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었다. 청소년올림픽은 IOC가 2010년에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상품이자 올림픽의 파생상품이다.

 일반 올림픽과 동일한 조건을 요구하지만 그만큼 인지도가 높지 않은 청소년올림픽은 비교적 민주적인 의사결정의 과정을 확립한 기존의 정치와 행정의 구조를 무시하고 대규모의 공적 자금을 운용하여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틈새 시장의 노릇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IOC는 정식 올림픽을 개최할 때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업의 파트너가 될 개최지를 발굴하고 접촉하여 개최지 선정 과정을 진행하며, 개최지가 부담할 비용의 액수는 노골적으로 최종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강원도는 IOC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단계까지 일을 벌인 후에 뒤늦게 도의회에 유치 동의안을 제출했다. 도민이 청소년올림픽과 관련된 결정에 의사를 반영할 통로는 없었으며, 개최가 확정된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은 공개되지 않았다. 강원도지사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00~600억원, 또는 1천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짧게 언급한 것이 전부이며 이러한 예산안 산정에 대한 근거도 전무하다. 강원도는 청소년올림픽 유치를 통해 남겨진 올림픽 시설들을 운영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다시 대규모의 예산을 쏟아부어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 외에는 거대한 시설들을 활용할 방법은 없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평창 올림픽의 유산 : 거대한 시설과 부채

 2019년 7월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올림픽 경기장의 효과적인 사후활용 방안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슬라이딩 센터,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 하키 센터 등 올림픽 시설 3개의 연간 운영비만 해도 102억 9300만원에 달할 것이며 적자 규모는 74억 4200만원일 것으로 예상된다.

 슬라이딩 센터는 1년 이상 방치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한 해 동안만 관리비 12억원이 투입되었다. 한 번 얼음을 얼리는 비용이 2억원 정도 소요되기에 대표팀은 해외에서 훈련을 진행했다. 2019년, 2020년 겨울 시즌에 스켈레톤 대륙간컵 대회 일부와 루지아시아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고 다음 시즌 대회 유치도 결정되었으나 매년 20억원씩 드는 유지비를 마련할 방도는 여전히 없다. 이에 강원도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수익형 체험시설, 일명 플라잉스켈레톤으로 불리는 시설을 도입하겠다고 했으며 시설 건설에 60억원 가량 소요할 예정이다. 그러나 만약 이 시설이 가능한 최대의 수익을 내더라도 연간 적자폭은 현재의 슬라이딩 센터 유지비보다 더 많은 26억 1400만원으로 예상된다.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장 역시 한 번 얼음을 얼리는 비용이 5천만원 가량 소요되기에 지난 2년 동안 콘크리트 바닥만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냉동창고, 테니스코트, 경빙장(icederby) 등으로 활용하자는 여러 방안이 제시되었으나 실현된 것은 없고 현재는 드론 경기장으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이 역시 미래가 불투명하다.

  올림픽 관련 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알펜시아 리조트는 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하여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 임기 시절 공사비 1조 6800억원을 들여 2009년 완공한 시설이다. 소유권과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강원도개발공사는 알펜시아 사업 강행으로 재정이 악화되어 빚더미에 앉았다. 건설 당시 발행한 공사채를 아직도 갚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부채는 총 1조 2390억원에 달하고 작년 한 해 동안 이자비용으로만 189억원을 지출했다. 2013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도 계속되는 재정 악화를 견디지 못한 강원도개발공사는 수년째 알펜시아 리조트의 민간기업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성이 없고 유지비만 많이 드는 올림픽 스포츠 시설을 인수하려 나서는 민간기업이 없어서 강원도개발공사는 계속 중앙정부에 인수를 요구해왔다. 그나마 매입 의사를 밝혀오는 몇몇 외국계 투자기업들도 부동산 감정가 2조원은 커녕 공사비 1조 68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수 금액을 제시하며 번번히 협상이 결렬되었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매각 협상을 진행하던 미국계 투자기업 매킨리 컨소시엄은 8천억원 가량의 인수 금액을 제시했고 상당히 협상이 진행되었으나 그 과정 역시 불투명했으며 협상 담당자는 사기업 보호를 위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되풀이하여 말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부당한 매각 절차 마저도 최근 기업 측의 일방적인 계약 불이행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갔다. 해당 기업은 2018년 12월에도 거의 동일한 절차로 인수를 진행하다가 일방적으로 파기한 바 있다.

올림픽 특구 사업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올림픽 유산은 올림픽 특구 사업이다. 올림픽 특별법에 의거해 올림픽과 아무 관련없는 온갖 개발사업에 특혜를 부여하는 올림픽 특구 사업은 현재도 진행중이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토지수용 절차를 생략하며 행정절차를 축소하고 세금 혜택을 부여하는 개발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마법같은 올림픽 특별법이다. 올림픽 특별법은 사기업들이 공적 자원을 이용한 이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올림픽의 본질에 정확히 들어맞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투자자와 시공사들을 위한 대형 숙박시설 건설과 리조트 사업은 ‘올림픽 유산 계승’과 ‘지역 발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공적 자원을 이용하여 안전하게 이윤을 획득하지만 모든 위험과 책임은 다시 공공 영역으로 되돌아 올 뿐이다.

 강릉의 경관을 대표하는 경포호수와 경포대 부근도 일찍이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며 도립공원 구역이 일부 해제되었다. IOC 위원의 숙소 등을 명목으로 3개의 호텔과 리조트가 건설되었다. 올림픽을 내세워 건설 허가를 받았던 또 다른 3개 호텔은 올림픽이 끝난지 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건설 중이다. 경포대 일대는 2019년 추가로 발표한 2차 올림픽 특구 사업에서 대상 구역이 확대되었으며 강릉시는 해당 지역에 ‘슈퍼히어로테마파크’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강릉시가 협약을 맺었다는 기업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으며 도의회에서는 부동산 투기 목적의 특권 사업 의혹을 제기하며 강릉시에 해명을 요청하고 있다.

 국가보호산림을 부분 해제하고 알파인 스키 경기장을 건설한 가리왕산도 올림픽 특구로 지정되었으며 올림픽 개최 기간까지 완공도 하지 못한 호텔을 건립하기 위해 숙암리 마을 주민들은 강제이주되었다. 보호구역을 해제하며 완전 복원을 약속했던 산림청도, 공사를 강행했던 강원도도 파괴된 숲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그들만의 잔치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긴 하지만 오랜 기간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최소한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과 행정 체계를 마련해왔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공공에 영향이 지대한 사안을 책임있게 논의하기 위한 제도도 분명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

 그러나 올림픽 유치 움직임이 시작되었던 2004년부터 지금까지 지역 정치인들과 중앙정부, 기업과 투자자들, 그리고 부동산 투기꾼들은 이와 같은 공적 장치를 무력화 시켜 각자의 이익을 충실히 달성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성공 사례를 남겨왔다. 지방 재정을 위기에 빠트려도 다음 고위직으로 이직할 수 있었고, 보호 산림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파괴되어도 부동산 수익을 얻을 수 있었고, 사업성이 없는 대형 공사를 마구 발주해도 ‘지역발전’을 내세워 당장 선거에서 표를 얻을 수 있었고,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 산재 사고가 발생하든 노동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든 하청업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실적만 한 줄 더 쌓을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공적 자원에 기생해 각자가 최대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동안에 사회적 의무와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올림픽이 제시해 주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이러한 완벽한 성공 사례다. 나날이 부채가 쌓여가고 있는 알펜시아 리조트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2주년을 기념하여 ‘2020 평창 평화포럼’이 개최되었다. 3일 동안 이어진 포럼에는 지역 정치인들과 IOC 위원들, 북한 개발에 관심이 높은 투자 기업 대표 등이 모여 또 다시 ‘평화’를 내걸고 각자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할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논의한 후 올림픽 폐허를 남겨두고 떠났다. 위대한 올림픽 유산은 강원도 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정부와 기업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대들도 책임을 져버리고 성공을 향해 갈 수 있는 이 지름길로 오라.

 서울시는 가장 적극적으로 올림픽 유산을 계승하여 2032년 올림픽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1988년의 올림픽 재해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어디서도 이와 같은 비극이 또 다시 벌어지는 악순환을 끝내기 위해 단호히 맞서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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